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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요

📚 이 글이 속한 가이드: 일본 다도

길주요(吉州窯)는 중국 장시성(江西省) 지안시(吉安市) 융허전(永和鎭) 일대에 있었던 역사적인 민간 가마터이다[1][2]. 당나라 말기에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해 남송(南宋) 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으며[1][2], 송대 투차(鬪茶) 문화의 유행 속에서 독창적인 흑유자기(黑釉瓷器)와 천목다완을 생산하여 동아시아 다도(茶道) 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3].

명칭과 지리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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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요라는 명칭은 가마터가 위치한 지안시가 과거 당·송 시대에 '길주(吉州)'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하였다[1][2]. 가마터의 핵심 유적이 장시성 지안현 융허전에 집중되어 있어 '영화요(永和窯)'라고도 불리며, 문헌에 따라서는 '동창요(東昌窯)'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1].

길주요의 유적지는 남부 장시성을 가로지르는 감강(贛江) 유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감강은 장강(揚子江)으로 연결되는 주요 수로 중 하나로, 완성된 도자기를 장시성 외부나 대외 수출항으로 원활하게 운송할 수 있는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대표적인 가마터로는 융허전 서쪽에 밀집된 24개의 영화요 요지 외에도 팽가요(彭家窯), 임강요(臨江窯), 오가요(吳家窯) 등이 존재하여 하나의 거대한 요계(窯系)를 형성하였다.

역사와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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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발굴과 문헌 고증에 따르면, 길주요의 역사는 당나라 중·만기인 9세기에 시작되었다[4]. 초기에는 투박한 청자, 흑갈색 도기, 조잡한 유백색 백자를 소량 생산하는 지방 가마에 불과하였다[4][5]. 북송(北宋) 대에 접어들어 강서성 인근 경덕진(景德鎭)의 청백자(靑白磁) 제작 기술을 수용하며 청백자와 정교한 백자를 생산하는 체계를 구축하였다[1][6].

남송 대(1127~1279)에 이르러 길주요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며 전성기에 진입한다[1][7]. 금나라의 침입으로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 왕조가 임안(臨安, 현재의 항저우)에 들어서면서, 북방의 관요와 정요, 그리고 자주요(磁州窯) 등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도예 명장들이 전란을 피해 남하하여 길주요가 있는 영화진 일대에 정착하였다[8][9]. 이로 인해 북방의 우수한 도자 기법인 백지흑화(白地黑花) 기법과 음각·양각 기술이 길주요의 토착 기술과 융합되었다[9]. 남송 조정이 남쪽으로 천도함에 따라 왕실 및 강남 문인층의 고급 다기 수요가 폭증하였고, 이는 길주요가 예술적 깊이를 더한 독창적인 흑유자기와 천목다완을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3세기 후반 원(元)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길주요는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1]. 특히 남송의 애국 재상 문천상(文天祥)의 군대와 원나라 군대 간의 치열한 전투가 영화진 일대에서 벌어집 가마터가 파괴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5]. 원대 초기에는 청백자나 조잡한 유하채화(釉下彩繪) 자기를 일부 지속 생산하며 명맥을 유지했으나[10], 명(明)대에 이르러 차를 마시는 방식이 가루차에서 잎차를 우려내는 방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흑유 다완에 대한 수요 자체가 소멸하였고, 결국 14세기를 기점으로 길주요는 완전히 가동을 멈추었다[10].

제법 및 태토의 기술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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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토의 물리적 성질

길주요 자기는 원료인 자토(瓷土)의 질량과 수급 면에서 독특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오히려 독창적인 기술적 대안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 가마터가 감강 강변의 모래 지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채취한 자토에는 다량의 모래알갱이(석영 및 장석 분말)가 혼입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기형을 빚는 흙몸(태토)의 입자가 매우 거칠고 조잡하며 성글었다.

이 거친 태토는 고온에서 치밀하게 유리질화되는 자화(瓷化)도가 낮았기 때문에 소성 후 도기(陶器)와 자기(瓷器)의 중간적 성질을 지니는 석기(Stoneware) 상태를 유지하였다. 이처럼 태질이 성글어 수분 흡수율이 높다는 약점이 있었으나, 기벽을 극도로 얇고 가볍게 빚어내어 이를 극복하였다[11]. 얇게 성형된 기물은 가마 안에서 완전히 구워졌을 때 금속성의 가볍고 맑은 쇳소리를 냈다[12].

유약의 조성과 소성 제어

길주요의 도공들은 투박한 흙몸의 결점을 감추고 시각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유약의 조성과 이중 시유(Double glazing) 기법을 발달시켰다. 이들이 사용한 기본 검은색 유약(흑유)은 산화철(Fe2O3)을 주요 착색제로 삼았으며, 가마 안의 소성 온도(약 1200℃~1280℃) 및 가마 내 산소 농도(환원염과 산화염의 조절)에 따라 다채로운 요변(窯變)을 일으켰다[3][13].

특히 기벽 전체에 철 함량이 높은 흑유를 입힌 뒤, 그 위에 초목의 재(ash)와 규산염을 섞어 만든 알칼리 토금속(Ca, Mg 등) 함량이 높은 실투성(비치는 성질이 낮은) 황백색 유약을 덧바르고 구워내는 정밀한 소성 공정을 거쳤다[14][15]. 두 종류의 유약은 가마 속 열 반응에 의해 서로 융합 및 분리 현상을 겪으며, 도공이 예측한 범위 내에서 매우 기묘한 시각적 효과를 자아냈다.

주요 종류와 장식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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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요는 당대 중국의 가마 중 가장 자유롭고 대담하며 서민적이고도 예술적인 장식 기법을 선보였다[16]. 주로 자연물이나 일상의 소재를 직접 도자 장식에 응용하였으며, 대표적인 종류는 다음과 같다[10].

종류 장식 기법 및 시각적 특징 과학적 원리 및 제조 공정
목엽천목 (木葉天目) 검은 찻잔 안쪽에 나뭇잎 한 장이 그대로 고착되어 있는 신비로운 형태. 기물에 흑유를 시유한 뒤 뽕나무 잎 등을 얹어 구워낸다[11][12]. 고온(약 1200℃ 이상) 소성 시 나뭇잎 속의 유기물은 타서 소실되고, 잎에 남은 규산(SiO2), 칼슘(CaO), 칼륨(K2O), 인(P2O5) 등의 무기 회분 성분이 표면 유약과 결합하여 얇은 투명 회유막을 형성함으로써 잎맥이 황갈색 또는 회백색 결정으로 영롱하게 고착된다[3][17].
대모천목 (玳瑁天目) 바다거북인 대모(玳瑁)의 등껍질(鼈甲) 무늬를 연상시키는 노란색과 검은색의 얼룩무늬[15][18]. 철 함량이 약 5~8%인 기본 흑유 위에, 나뭇재가 많이 함유되어 칼슘과 마그네슘 농도가 높고 철분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황색 유약을 점을 찍듯 덧바른다[14]. 소성 시 두 유약층의 상분리(Phase separation) 현상에 의해 불규칙한 반투명 황갈색 요변 무늬가 도출된다[18].
전지첩화 (剪紙貼花) 중국 민간의 종이 오림 공예(전지)를 도자 표면에 결합한 회화적 장식. 흑유를 1차 시유한 뒤 매화, 용, 봉황, 기하학적 문양 혹은 길상(吉祥) 문구를 오려낸 두꺼운 종이를 기벽에 붙인다[19]. 그 위에 철 성분이 다른 2차 유약을 덧바르거나 시유한 뒤 종이를 떼어내거나 그대로 구워낸다. 종이가 타서 사라진 자리와 남은 자리의 유약 대비를 통해 정교한 문양이 드러난다.
토호천목 (兎毫天目) 토끼의 부드러운 털무늬처럼 가느다란 선들이 흘러내린 모양[20]. 유약 속에 함유된 다량의 산화철 성분이 고온에서 녹아 흘러내리며 표면에 가느다란 결정선들을 형성한다[20]. 복건성 건요의 대표 작풍을 모방 및 독자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유적천목 (油滴天目) 검은 유면 위에 은색 혹은 금색의 작은 기름방울 결정들이 산포된 형태[20]. 소성 중 유약 표면으로 끓어오른 철 성분의 가스 기포가 터지면서 생긴 미세한 구멍에 철 결정이 집중적으로 응집·냉각되어 둥근 반점으로 굳어지는 요변 기법이다.
백지흑화 (白地黑花) 백색 화장토를 칠한 기벽 위에 검은색 안료로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기법[21]. 북방의 자주요에서 유행한 화장토 분장 기법을 수용한 것으로, 길주요 특유의 거친 태토를 감추고 모란 넝쿨, 파도, 사슴 등의 장식적인 무늬를 유창한 필치로 묘사하였다[9].

이 중에서도 목엽천목은 길주요 고유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다[11]. 찻잔 속에 담긴 한 잎의 뽕잎은 물(찻물)을 부었을 때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흥취를 돋우어 투차를 즐기던 문인들의 극찬을 받았다[12].

차(茶) 문화와의 연관성 및 세계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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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투차(鬪茶) 문화와 흑유의 성행

송대에는 차 맷돌에 곱게 간 가루차(말차)를 찻잔에 담고 끓는 물을 부은 뒤, 대나무 다선(茶筅)으로 빠르게 저어 조밀한 하얀 거품을 일으켜 마시는 투차 문화가 크게 유행하였다[3]. 투차에서는 거품의 색이 얼마나 순백에 가까운지, 그리고 거품이 가라앉아 잔 벽에 물자국이 생기는 속도가 얼마나 느린지를 겨루었다[3]. 따라서 순백의 탕화(湯花, 차 거품)와 가장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거품의 상태를 가장 선명하게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검은색 다완(흑자완)이 최고의 명품 다기로 추앙받았다[3].

길주요는 이러한 차 문화적 배경 속에서 남송의 문인들과 호사가들의 예술적 취향에 완벽히 부응하였다. 검은 잔 바닥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목엽천목의 나뭇잎 무늬나 대모천목의 화려한 얼룩무늬는 맑고 하얀 찻물과 만났을 때 시각적 흥취를 극대화하였다[12]. 특히 차를 마실 때 잔 속의 찻물이 줄어들면서 바닥에 숨겨져 있던 나뭇잎이나 꽃무늬가 점차 선명하게 드러나는 독특한 공간감은 당시 풍류의 정수로 여겨졌다[7].

선종(禪宗) 사찰과의 교류 및 일본 전래

길주요 천목다완의 번영은 불교 선종(禪宗) 문화와 매우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길주요가 위치한 융허전 인근의 청원산(靑原山)은 당대 이래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남방 선종의 성지였으며, 사찰 내에서는 정신을 맑게 하고 수행을 돕는 도구로 다례(茶禮)가 엄격하게 행해졌다. 이때 사용되던 길주요의 정교한 흑유 다기들은 사찰과 가마 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특히 목엽천목에 주로 사용된 뽕나무 잎은 불가(佛家)에서 선(禪)적 깨달음과 불성(佛性)을 상징하는 시각적 매개체로 해석되기도 하였다[11].

당시 중국으로 건너와 천목산(天目山) 일대의 선종 사찰에서 유학하던 일본의 승려(선승)들은 귀국할 때 선종의 교리와 함께 차를 마시는 풍습, 그리고 사찰에서 사용하던 길주요와 건요의 흑유 다완들을 함께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12]. 일본에서는 천목산에서 가져온 다완이라 하여 이를 '천목(天目, 텐모쿠)'이라 통칭하였으며, 그중 길주요의 대모천목은 '다이히 천목(玳玻天目)' 또는 '다이히 잔(玳玻盞)'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 귀중하게 다뤄졌다[22][23].

이러한 천목다완은 일본 무로마치 시대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를 거치며 다도 본연의 숭고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와비차 문화의 형성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7]. 자연의 불완전함과 질박함 속에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찾는 와비차의 미학은, 인위적인 완벽성을 배제하고 거친 태토 위에 자연물인 나뭇잎을 그대로 구워내거나 가마 안의 우연한 요변에 의지한 길주요의 예술적 철학과 정서적으로 완벽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되어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길주요 목엽천목 다완 등은 오늘날까지도 동아시아 다도 미술의 정수를 상징하는 최고의 명작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11].

같이 보기

각주

[1] 길주요 - 월간미술 – monthlyart.com
[4] koh-antique.com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5] koh-antique.com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10] Jizhou ware - Wikipedia – en.wikipedia.org
[11] 천목 다완 – moco.or.jp
[16] Jizhou Ware, Joyous, Jaunty, and Folksy – english.chinatoday.com.cn
[18] jafonart.com – jafonart.com
[20] 천목 - 월간미술 – monthlyart.com

참고 문헌

  • 방병선, 《중국 도자사》, 예경, 2012.
  • 국립중앙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 삼화출판사, 2006.
  • 葉喆民, 《中國陶瓷史》, 三聯書店,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