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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 다완

라쿠 다완(樂茶碗)은 16세기 후반 일본 모모야마 시대에 다성(茶聖) 센노 리큐다도 철학을 바탕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말차용 찻사발이다[1][2]. 일반적인 도자기와 달리 물레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빚어 형태를 잡으며, 가마에서 소성 중 유약이 녹았을 때 기물을 즉시 꺼내어 급랭시키는 극적인 소성 기법을 통해 완성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와모노(和物) 다완이다[3][4].

기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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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 다완은 교토에 거주하던 장인 초지로(長次郞, ?~1589)에 의해 처음 탄생하였다[4][5]. 초지로는 본래 사찰이나 성곽의 지붕을 장식하는 기와를 굽던 와장(瓦匠)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중국 명나라 출신의 도공 아메야(阿미야)로 알려져 있으나 조선 출신의 도공이라는 이설도 존재한다[4][6]. 당시 일본의 차 문화는 중국에서 건너온 화려하고 대칭적인 당물(唐物) 다완이나 조선에서 건너온 소박한 고려다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들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여 가격이 매우 비싸고 구하기 어려웠다[2][7].

이에 센노 리큐는 외국의 다도구에 의존하는 기존의 사치스러운 차 문화를 극복하고, 자신이 주창한 와비차(侘茶)의 정신, 즉 소박함과 정적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일본 독자의 다완을 구상하였다[2][7]. 리큐는 기와를 굽던 초지로의 부드러운 태토 조형 기술과 유약 기법에 주목하여, 물레 자국 없이 사람의 온기가 담긴 비대칭적인 다완 제작을 의뢰하였다[1][2]. 이렇게 제작된 다완은 1580년대부터 다회 기록인 『다회기(茶會記)』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센노 리큐가 주도한 와비차의 핵심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2].

'라쿠(樂)'라는 명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에 세운 화려한 궁전인 쥬라쿠다이(聚樂第)에서 글자를 따와, 초지로와 공동으로 가마를 운영하며 기와를 굽던 동업자 다나카 소게이(田中宗慶)에게 황금으로 된 '樂'자 인장을 하사한 것에서 유래하였다[8][9]. 이 인장은 '천하제일의 그릇'이라는 찬사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9]. 이후 이 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는 '라쿠야키(樂燒)'라 불렸으며, 초지로의 후손들은 '라쿠'를 가문의 성씨로 삼아 오늘날까지 16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8][10]. 이는 특정 도자기의 양식이 가문의 성씨이자 고유 브랜드로 정착한 세계 도자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이다[8].

제작 기법과 소성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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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 다완의 제작 공정은 기계적인 완벽함보다는 제작자의 신체적 개입과 자연의 우연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다[11]. 일반적인 도자기가 물레의 원심력을 이용해 좌우 대칭의 얇은 벽을 형성하는 것과 달리, 라쿠 다완은 손으로 흙을 주물러 모양을 잡는 '테즈쿠네' 방식으로 성형한다[4][12].

성형 과정에서는 흙을 둥글게 뭉친 뒤 안쪽을 파내고 손가락과 손바닥의 압력으로 두께를 조절한다[11][13].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히면 대나무 주걱을 사용하여 표면을 깎아내며 다완의 무게와 질감을 미세하게 조율한다[1][13][14]. 이 때문에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약간의 굴곡과 비대칭성을 띠게 되며, 쥐었을 때 손안에 감기는 독특한 온기와 질감을 지닌다[11].

소성 기법 또한 일반 도자기와 완전히 궤를 달리한다[3]. 보통의 가마 소성은 기물을 재임한 뒤 온도를 서서히 올리고, 소성이 끝난 뒤 가마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며칠 동안 기다린 후에 꺼낸다[3]. 그러나 라쿠 소성은 가마를 미리 달구어 둔 상태에서 유약을 바른 다완을 한 번에 한두 개씩만 넣고 빠르게 구워낸다[4].

가마 내부 온도가 유약의 융점인 800°C에서 1100°C 사이에 도달하여 유약이 벌겋게 녹아 흐르는 순간, 가마 문을 강제로 열고 긴 쇠집게를 이용해 다완을 가마 밖으로 끄집어낸다[3][15]. 가마 밖으로 나온 뜨거운 다완은 공기 중에서 자연 급랭시키거나, 톱밥·낙엽·신문지 등이 담긴 밀폐 용기에 담아 유기물이 타들어 가며 발생하는 연기를 입히는 탄화 과정을 거친다[15]. 탄화가 끝나면 다시 차가운 물에 담가 온도를 낮추며 고정한다[16].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열충격은 유약 표면에 독특한 균열과 그을음 무늬를 만들어내며, 예측할 수 없는 미적 효과를 낳는다. 특히 쇠집게로 붉게 달아오른 다완을 집어 올릴 때 남는 집게자국(하사미아토)은 불완전함의 미학을 상징하는 라쿠 다완의 중요한 감상 요소로 대접받는다[4].

라쿠 다완 도식

라쿠 다완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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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 다완은 시유하는 유약과 소성하는 온도, 흙의 성질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17].

쿠로라쿠

초지로가 창시한 전통적인 라쿠 다완의 원형으로, 센노 리큐가 가장 선호했던 종류이다. 가모강(賀茂川) 상류에서 채취한 철분이 풍부한 검은 돌을 곱게 갈아 만든 유약을 수차례 덧발라 시유한다[9][14]. 1000°C에서 1100°C 사이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소성하며, 가마에서 꺼내자마자 차가운 바람을 쐬어 급랭시키는 과정에서 칠흑 같은 검은색과 깊이 있는 광택이 발현된다[9][17]. 이 깊은 검은색은 말차의 선명한 초록색 거품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차의 빛깔을 돋보이게 한다.

아카라쿠

적토(붉은 진흙)를 사용하여 빚거나 백토로 만든 기물에 황토 성분의 점토액을 바른 뒤, 저화도 투명유를 시유하여 800°C 내외의 저온에서 소성한다[17]. 쿠로라쿠와 달리 소성 후 즉시 급랭하기보다는 비교적 천천히 온도를 낮추는 방식을 취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검은 다완이 어둡고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화려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아카라쿠를 더 즐겨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초기 초지로 시대에는 표면이 다소 거칠고 붉은 발색이 불안정했으나, 이후 대를 거치며 정교한 붉은 색감이 완성되었다.

시로라쿠

백토 위에 저온에서 녹는 투명 유약을 발라 굽는 방식으로, 맑고 소박한 우윳빛을 띤다[4]. 라쿠 다완 중 시로라쿠는 희귀한 편이며, 에도 시대 초기의 전설적인 예술가인 혼아미 코에츠(本阿弥光悦, 1558~1637)가 만든 '후지산(不二山)'이 시로라쿠의 대표작이다[4]. '후지산'은 하얗게 눈 덮인 후지산의 산봉우리와 가마 아랫부분에서 탄화되어 검게 변한 모습을 반씩 대비시킨 기법의 걸작으로,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다완 중 단 두 점만 지정된 일본 국보 중 하나이다[4].

다도에서의 미학 및 예술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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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 다완은 단순히 차를 담는 그릇을 넘어, 일본 선불교 사상과 와비사비 미학이 형상화된 정신적 매개체이다[6][7].

  • 선불교와 와비사비의 구현: 선불교의 공(공) 사상과 직관적 깨달음은 인위적인 장식이나 대칭의 미학을 거부한다[6]. 라쿠 다완의 일그러진 형태, 울퉁불퉁한 표면, 불완전하게 흐른 유약 자국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긍정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선(선)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6][7].
  • 온기와 촉감의 극대화: 라쿠 다완의 태토는 점토 내부에 미세한 공기 구멍이 많은 다공성(다공성) 구조를 띠고 있으며, 비교적 두껍게 성형된다. 이 때문에 열전도율이 낮아 끓는 물로 말차를 격불하여도 손에 닿는 온도가 뜨겁지 않고 따스한 온기로 전달된다[17]. 또한 표면이 부드럽고 가벼워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을 주며 입술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11][17].
  • 다선과 찻물의 소리: 말차를 격불할 때 대나무로 만든 다선이 다완의 우툴두툴한 내벽에 부딪히며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4]. 차인들은 이 소리를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자연의 소리에 비유하며 다도의 정취를 돋우는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4].

타 다완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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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를 마시는 데 사용되는 다완은 기원과 형태, 소성 방식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화려함의 극치이자 선불교 사찰에서 격식 있게 쓰이던 중국산 천목 다완(天目茶碗)과, 소박한 자연미를 지향하는 라쿠 다완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도자 예술이다[2][4][7]. 역사적으로는 차의 맛을 겨루는 투차 문화가 유행하던 시절 천목 다완이 널리 쓰였으나, 리큐의 와비차 정립 이후로는 라쿠 다완이 다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2][7].

구분 라쿠 다완 (樂茶碗) 천목 다완 (天目茶碗) 고려 다완 (高麗茶碗)
생산지 및 국적 일본 교토 (와모노)[4][5] 중국 송대 건요·길주요 등 (당물)[4] 조선 민간 가마 (고려물)[7]
성형 방식 손으로 빚고 주걱으로 깎음 (물레 미사용)[4][12] 물레를 통한 완벽한 대칭 성형 물레를 통한 자연스러운 성형
소성 특징 800°C~1100°C 저온 소성 및 강제 급랭[3][15][17] 1200°C~1300°C 고온 소성 및 가마 내 서행 냉각[3][18] 1100°C~1250°C 중고온 소성[7][18]
기형과 외관 두껍고 불규칙한 원통형 또는 반구형, 집게자국 존재[4] 굽이 좁고 위가 넓은 삿갓 모양 (천목형)[4][19] 사발 모양, 자연스러운 뒤틀림과 유약 흘러내림[7]
대표적인 유약 효과 쿠로라쿠(가모강 검은 돌), 아카라쿠(황토와 투명유)[14][17] 유적천목의 은빛 무늬, 목엽천목의 나뭇잎 유약 이도다완의 비파색 유약과 굽 주변의 매화피(가이라기)[7]
미학적 지향 와비사비 (불완전함과 소박함)[7][11] 귀족적 화려함과 정교한 인공미[2] 인위적 가공을 배제한 순수한 자연스러움[7]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Morgan Pitelka, 'Handmade Culture: Raku Potters, Patrons, and Tea Practitioners in Jap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5.
  • Herbert H. Sanders, 'The World of Japanese Ceramics', Kodansha International, 1967.
  • 樂美術館 (Raku Museum) 학술 도록 및 공식 해설 자료.
분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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