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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야키

라쿠야키(樂燒, 楽焼)는 16세기 후반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다성(茶聖) 센노 리큐(千利休)의 와비차(侘び茶) 사상에 바탕을 두고 도공 조지로(長次郎)가 창시한 전통 저화도 연질 도기 및 다완(찻사발) 제작 기법을 가리킨다. 물레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형태를 빚는 수성형(手捏ね)과, 유약이 녹아 붉게 달아오른 기물을 가마에서 즉시 꺼내어 급랭시키는 독창적인 소성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라쿠야키 도식

역사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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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이전까지 일본의 다회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된 화려하고 결점 없는 청자나 백자 등의 '가라모노(唐物)'가 최고의 권위를 누렸다. 이후 조선 사기장들이 실생활용으로 빚은 분청사기와 사발(이도다완 등 '고라이모노')이 자연미와 무심한 조형으로 다인들에게 크게 각광받았으나, 이는 본래 일본 다도를 위해 고안된 기물이 아니었다.

센노 리큐는 기존의 귀족적이고 사치스러운 다도 양식에 반대하여, 불완전하고 소박한 멋을 긍정하는 선(禪) 중심의 와비차를 정립하였다. 리큐는 자신의 이상을 오롯이 담아낼 전용 다완을 구상하였고, 교토에서 기와와 연유 도기를 빚던 장인 아메야(飴屋)의 아들 조지로(長次郎, ?~1589)에게 다완 제작을 의뢰하였다. 조지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저택인 주라쿠다이(聚樂第) 조영에 참여하던 기와 장인이었다.

조지로는 리큐의 지도 아래 1580년대 무렵 장식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손의 감각과 흙의 질감만을 극대화한 검은색과 붉은색 찻사발을 완성하였다. 이 다완은 당대에는 '이마야키(今焼, 지금 빚은 그릇)' 등으로 불렸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라쿠다이의 명칭에서 따온 '락(樂)' 자가 새겨진 황금 도장을 조지로의 가문에 하사하면서 '라쿠야키'라는 이름이 공식화되었다.

조지로의 뒤를 이은 2대 조케이(常慶)부터 라쿠 성씨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으며, 3대 도뉴(道入, 통칭 논코), 9대 료뉴(了入) 등을 거치며 현대의 16대 라쿠 기치자에몬(樂吉左衛門)에 이르기까지 450년 넘게 한 가계가 기법을 전승하는 일자상전(一子相傳)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한편, 에도 시대 초기의 천재 예술가 혼아미 고에쓰(本阿弥光悦)는 라쿠 가문의 혈족은 아니었으나 조케이·도뉴 부자와 교류하며 '후지산(不二山)'과 같은 독보적인 라쿠다완 걸작을 남겼다.

제조 공정과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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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야키는 점토 채취부터 성형, 시유, 소성에 이르는 전 과정이 일반 도자기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성형과 조각

라쿠야키는 물레의 원심력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 도공은 오직 두 손의 악력과 손가락 압력만으로 흙덩어리를 주무르고 늘려 대략적인 형태를 빚는 '테즈쿠네(手捏ね)' 기법을 사용한다. 태토로는 교토 일대에서 산출되는 규산과 철분이 풍부한 주락토(聚楽土)가 주로 쓰인다. 손으로 빚은 기물이 반건조 상태에 이르면 대나무 주걱(헤라)이나 쇠칼로 기물의 안팎을 정밀하게 깎아내는 '케즈리(削り)' 공정을 거친다. 이 깎기 작업을 통해 투박한 외형 속에 숨겨진 적절한 두께와 유려한 선을 구현하며,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낸다.

소성과 냉각

기물이 건조되면 약 700℃~800℃ 전후의 저온에서 초벌구이(스야키)를 진행하여 다공성을 부여한다. 이후 유약을 입혀 본벌 소성에 들어간다. 라쿠야키의 가마는 수천 점을 한꺼번에 굽는 대형 연실요(오름가마)가 아니라, 숯을 연료로 삼아 한두 점의 기물만을 굽는 소형 단실 가마(내요)다. 도공은 수동 풀무(후이고)를 조작하여 가마 내부 온도를 단시간에 끌어올린다.

유약이 충분히 용융되면 가마 문을 열고 긴 철제 집게(얏토코)로 붉게 달아오른 기물을 직접 가마 밖으로 끄집어낸다. 이를 '히키다시(引き出し)'라 부른다. 섭씨 1,000℃ 안팎의 고온에 있던 기물은 바깥 공기 중에서 급속도로 냉각되거나 물에 담가진다. 집게가 닿았던 자리에 남는 '얏토코 아토(집게 자국)'는 인위적으로 지우지 않고 자연스러운 경치(景色)로 감상한다.

종류와 조형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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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야키는 사용된 원료와 소성 조건에 따라 크게 구로라쿠(黒楽)와 아카라쿠(赤楽)로 대별된다.

구분 구로라쿠(黒楽) 아카라쿠(赤楽)
태토 주락토 및 내화도 높은 백토질 점토 철분이 함유된 적갈색 주락토
유약 원료 카모가와 흑석 분말, 천연 철계 흑유 투명 백옥유(연유계 유리질 유약)
소성 온도 약 1,000℃ ~ 1,200℃ (상대적 고온) 약 750℃ ~ 850℃ (저온)
냉각 방식 가마 인출 후 공기 급랭 또는 급수 냉각 가마 인출 후 공기 중 서랭
색상 및 질감 칠흑색, 깊은 흑갈색, 무겁고 매끄러움 적주황색, 벽돌색, 온화하고 부드러운 토기 질감
다도 계절감 고요하고 차가운 겨울철 다회에 선호 따뜻하고 화사한 봄·가을 다회에 선호

구로라쿠의 조형미

구로라쿠는 교토 가모강(鴨川) 상류에서 채취한 검은 자갈인 '카모가와 흑석(加茂川黒石)'을 미세하게 분쇄하여 만든 흑유를 사용한다. 이 광물에는 사산화삼철(Fe3O4) 등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초벌 기물에 유약을 십수 회 덧바른 뒤 고온에서 녹여내고 즉시 급랭시킴으로써 산화 반응을 억제하여 칠흑 같은 검은빛을 완성한다. 완전한 좌우 대칭을 거부하는 비정형의 윤곽과 두터운 흑유의 질감은 응축된 정적을 드러낸다.

아카라쿠의 조형미

아카라쿠는 철분을 함유한 주락토 바탕에 규석과 산화납 성분이 주를 이루는 투명한 백옥유(연유)를 시유하여 굽는다. 흙 속에 함유된 산화철(Fe2O3)이 저온 소성 과정을 거치며 은은한 붉은색과 주황빛으로 발색한다. 소성 후 가마에서 꺼내 서서히 식히므로 흙의 따스한 온기와 부드러운 표면 질감이 고스란히 유지된다.

다도 문화에서의 위상과 기능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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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도계에는 명품 다완의 서열을 상징하는 '일라쿠 이하기 삼가라쓰(一楽二萩三唐津)'라는 오랜 격언이 전해진다. 이는 라쿠야키가 다도 의례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상을 입증한다.

다회 의례에서의 역할

정통 다회에서 라쿠다완은 단순한 음다 도구가 아니라 다실의 철학적 분위기를 결정하는 핵심 기물이다. 정갈한 코스 요리인 차카이세키가 마무리되고 정객들이 다시 다실로 들어서는 중입(中入) 이후, 가장 엄숙한 순간에 올리는 농차(濃茶) 좌에서 구로라쿠는 으뜸 찻사발로 애용된다. 짙고 걸쭉하게 개어낸 녹색의 농차와 구로라쿠의 칠흑색 표면이 이루는 강렬한 색채 대비는 시각적 긴장감과 몰입을 이끌어낸다.

물리적·감각적 기능성

라쿠야키는 감각 기관과의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제작된 기물이다.

  • 낮은 열전도율과 보온성: 저화도로 구워낸 연질 도기 특유의 다공질 구조는 공기층을 품고 있어 열전도율이 매우 낮다. 끓는 물을 부어도 그릇 겉면이 급격히 뜨거워지지 않아 손으로 감싸 쥐기에 알맞으며, 차의 온기는 오랫동안 유지된다.
  • 부드러운 입술 감촉: 물레로 깎아낸 예리한 날믐과 달리 손으로 만져 다듬은 완만한 구연부(입술이 닿는 테두리)는 찻물을 들이켤 때 입술에 부드럽게 밀착된다.
  • 다선과의 조화: 기물 안쪽 바닥에는 찻물이 모이도록 살짝 파인 '차다마리(茶溜まり)'가 형성되어 있다. 대나무로 만든 [다선]으로 차를 저을 때 단단한 자기처럼 쨍그랑거리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발생하지 않고, 사각거리는 차분하고 낮은 음향이 발생한다.
  • 다실 기물의 보호: 굽(고다이)과 바닥 접촉면이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워, 귀중한 다실의 다다미 표면을 긁거나 손상시키지 않는다.

서양 라쿠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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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접어들며 라쿠야키의 원리는 서구 예술계로 전파되었으나, 현대 서양 도예의 '라쿠'는 일본의 전통 라쿠야키와 개념 및 제법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1911년 일본에서 라쿠 소성을 접하고 귀국하여 1940년 저서 《도예가의 책(A Potter's Book)》을 출간, 서구에 라쿠라는 개념을 문헌으로 알렸다. 이후 1960년대 미국의 도예가 폴 솔드너(Paul Soldner)는 이를 변형하여 '아메리칸 라쿠(서양 라쿠)'를 창안하였다.

서양 라쿠의 핵심은 가마에서 꺼낸 고온의 기물을 톱밥, 마른 낙엽, 신문지 등이 담긴 밀폐 용기에 집어넣어 연기를 피우는 '소성 후 환원(Post-firing reduction)' 공정에 있다. 유기물이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탄소와 불완전 연소 가스는 유약의 균열 틈새로 침투해 검은 그을음 선(크랙)을 만들고, 구리나 은 성분의 유약에서 무지갯빛 금속성 광택(러스터)을 유도한다.

반면 교토의 전통 라쿠야키는 소성 후 가연성 통에 넣어 탄화시키는 후환원 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 전통 라쿠가 다도 의례와 선적 절제를 위해 촉각과 형태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반면, 서양 라쿠는 극적인 시각적 우연성과 표면 장식 효과를 추구하는 순수 조형 도예로 분화되었다.

취급과 보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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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야키는 고온에서 치밀하게 유리화된 자기가 아니라 수분 흡수율이 높은 연질 도기이므로 사용과 관리에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 충격 주의: 물리적 충격에 매우 취약하여 단단한 물체와 부딪히면 구연부가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다.
  • 세척 방식: 다공질 태토와 유약의 미세한 균열 사이로 냄새와 기름때가 쉽게 스며든다. 따라서 합성세제나 주방용 세척제를 일절 사용해서는 안 되며, 미온수에 부드러운 천이나 손으로만 헹궈내야 한다.
  • 건조와 보관: 찻물이 밴 상태로 밀폐 보관하면 곰팡이가 피거나 악취가 밸 수 있다. 사용 후에는 그늘지고 통풍이 원활한 곳에서 며칠간 완전히 내부 수분을 건조한 뒤 오동나무 상자(기리바코)에 넣어 보관해야 태토의 변질을 방지할 수 있다. 오랜 세월 정성스럽게 사용하여 찻물이 흙에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과정을 다도에서는 '그릇을 기른다'고 표현한다.

같이 보기

각주

[7] 數位文化中心 – openmuseum.tw
[9] ColBase – colbase.nich.go.jp
[17] Reddit – reddit.com
[18] cerazine.co.kr – cerazine.co.kr
[19] 일본의 다빈치 홍아미 고에쓰 – historylibrary.net
[20] 혼아미 고에츠 — Google Arts & Culture – artsandculture.google.com
[21] navitime.com – japantravel.navitime.com
[22] worthpoint.com – worthpoint.com
[23] thepottersshopandschool.com – thepottersshopandschool.com
[24] uitm.edu.my – ir.uitm.edu.my
[26] Paul Soldner's Official Website – paulsoldner.com
[27] lameridiana.fi.it – lameridiana.fi.it
[28] Paul Soldner's Official Website – paulsoldner.com
[30] 동북아역사넷 < 동북아역사재단 – contents.nahf.or.kr

참고 문헌

  • Bernard Leach, 《A Potter's Book》, Faber and Faber, 1940.
  • Morgan Pitelka, 《Handmade Culture: Raku Potters, Patrons, and Tea Practitioners in Japan》,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5.
  • 林屋晴三, 《日本の陶磁 楽》, 中央公論社, 1991.
분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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