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감청자
상감청자(象嵌靑磁)는 고려 시대에 크게 발달한 도자기이자 그 제작 기법으로, 바탕흙에 무늬를 새긴 뒤 다른 색의 흙을 채워 넣어 구워내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완성된다[1]. 특히 12세기 중엽부터 고려의 다도(茶道) 문화와 결합하면서 다완(茶碗), 주전자, 잔과 잔받침 등 최상급 다구(/wiki/다구)로 널리 제작되어 실용성과 고도의 미학적 가치를 함께 구현하였다[2][3].

고려의 차 문화와 상감청자의 발달 배경
편집
고려 시대에는 왕실과 사찰, 문인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음다(飮茶) 문화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4]. 국가 차원에서 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관리하는 행정 구역인 다소(茶所)가 운영되었으며, 도성 곳곳에 차를 판매하고 대화를 나누는 다점(茶店)이 성행할 만큼 차 소비가 보편화되어 있었다[4]. 이러한 문화적 풍토 속에서 정교한 차 도구인 다구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4].
고려 초기에는 중국의 월주요나 형주요 등에서 수입한 다완을 주로 사용하였으나[2], 10세기 후반부터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의 가마를 시작으로 자체적인 청자 생산 기술이 축적되기 시작하였다[1]. 12세기에 이르러 고려청자는 천하제일로 칭송받는 독자적인 비색(翡色)을 완성하였으며[5][6], 뒤이어 나전칠기나 금속 공예의 은입사 기법을 도자기에 응용한 상감 기법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7]. 이로써 단순한 실용 기명을 넘어, 차를 마시는 예식의 품격을 높이는 예술품으로서 상감청자 다구가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3].
상감청자의 제법과 과학적 특성
편집
상감청자의 제작은 원료의 엄선부터 성형, 정밀한 조각, 흙의 감입, 소성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물리화학적 제어 기술을 필요로 한다[1][8].
태토와 상감 안료의 조화
청자의 바탕이 되는 태토는 철분이 약 2%에서 5% 정도 함유된 다갈색의 점토를 사용한다[8]. 점력이 우수한 이 점토는 다채로운 형태의 다구를 빚기에 유리하다[8]. 성형 후 그릇이 반건조된 상태에서 조각칼로 원하는 문양을 파내는데[1], 이때 홈에 메워 넣는 흙을 상감토라고 한다[8]. 상감토로는 구운 후에 순백색을 띠는 백토(白土)와 자토(赭土, 철분이 많아 구우면 검은색을 띠는 붉은 흙)가 쓰인다[1]. 서로 다른 수축률을 가진 흙들이 가마 속에서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정밀하게 밀도를 맞추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유약의 성분과 번조
상감토를 메운 표면을 수평으로 매끄럽게 깎아낸 뒤[8], 1차로 약 800°C에서 초벌구이를 진행한다[9]. 이후 유약을 시유하는데, 고려청자의 유약은 규석 성분 약 60%, 칼슘 성분 약 20%에 미량의 철분(1~2%)과 망간, 티타늄 등이 포함된 석회질 유약이다[8]. 가마 안에서 산소 공급을 억제하는 환원염(還元炎) 상태로 1,200°C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내면[8], 유약과 태토 속의 산화제이철(Fe2O3)이 산화제일철(FeO)로 환원되면서 영롱하고 푸른 비취빛을 띠게 된다[6][8].
다구(茶具)로서의 상감청자 종류와 기능
편집
고려 시대의 음다법은 가루차(말차)를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다선(茶筅)으로 거품을 내어 마시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찻잎을 솥에 덖어 우려내는 덖음차(/wiki/덖음차) 방식도 병행되었다[10]. 이에 따라 상감청자 다구들은 각각의 기능적 목적에 부합하도록 정교하게 고안되었다.
- 완(碗, 다완): 가루차를 풀어 마시는 그릇으로, 입지름이 넓고 굽이 낮아 다선으로 찻가루를 휘젓기에 최적화된 형태를 띤다[10][11][12]. 내면에는 백상감으로 화려한 당초문을 장식하고, 외면에는 은은한 국화송이를 흑백상감하여 차를 마실 때 시각적 조화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13]. 국보로 지정된 '청자 상감당초문 완'이 대표적이다[14].
- 주자(注子, 주전자): 뜨거운 물을 담아 주수(/wiki/주수)하거나 차를 우려내어 잔에 출탕(/wiki/출탕)하는 도구이다. 온호(/wiki/온호) 및 숙우(/wiki/숙우)의 역할을 겸하였던 주자는 표주박 모양이나 참외 모양 등 수려한 곡선미를 지녔으며[15][16],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등이 대표적인 명품으로 꼽힌다[17][18].
- 잔(盞)과 잔대(盞臺/잔탁): 차를 받아 마시는 찻잔과 이를 받치는 잔받침이다[4]. 잔탁은 손으로 전달되는 열을 차단하고 찻잔의 균형을 잡아주며[4], 주로 꽃모양이나 모란, 국화 등의 문양을 상감하여 예식의 격조를 높였다[19].
- 타호(唾壺): 찻잔을 헹군 물이나 차 찌꺼기를 버리는 퇴수기 역할을 담당하였다[10]. 넓은 나팔 모양의 구연부를 지녀 물을 버리기 수월하게 제작되었다[20].
주요 장식 문양과 다도 철학의 표상
편집
상감청자 다구의 표면을 장식한 문양들은 단순한 시각적 장식을 넘어, 차를 마시며 자아를 성찰하던 고려인들의 정신세계를 담고 있다[10].
- 국화절지문(菊花折枝文): 서리를 맞고도 꺾이지 않는 국화는 고결함과 은일(隱逸)의 상징으로, 세속을 멀리하고 불교적 선(禪)의 경지를 추구하는 다선일여(茶禪一如)의 정신과 부합하는 대표적인 다구 문양이다.
- 운학문(雲鶴文): 푸른 하늘과 흰 구름 속을 날아다니는 학의 형상은 현실의 고뇌를 벗어나 도교적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염원을 보여준다[9].
-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 늘어진 버드나무와 물새가 어우러진 연못가 풍경은 잔잔하고 평온한 자연의 정취를 청자라는 작은 그릇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어[15], 음다 공간의 정제된 평온함을 고양한다.
미학적 가치와 도자사적 의의
편집
상감청자 다구는 자연의 비색과 정밀한 백토·자토의 색대비가 이루어내는 극치에 달한 아름다움으로 당대 송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천하제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5][21]. 차의 짙은 녹색 거품이 은은한 비색 청자 다완의 안쪽에 담겼을 때 연출되는 시각적 보색 대비는 다도 행위 자체를 하나의 입체적인 종합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고려 후기 사회적 변동과 외침을 겪으며 청자 가마들이 파괴되고 상감청자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상감청자의 독창적인 장식 기법과 흑백의 미감은 조선 초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한 분청사기 다완의 모태가 됨으로써, 한국 전통 다구 예술의 계보를 이어주는 기술적·미학적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였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강경숙, 《한국 도자기사》, 일지사, 2012.
- 윤용이,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돌베개, 2007.
- 국립중앙박물관, 《고려청자 학술논문집》, 국립중앙박물관,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