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위키
로그인

명물기레

명물기레(名物裂)는 일본 다도에서 ‘명물(名物)’로 공인된 유서 깊은 다도구를 보관하는 주머니인 시후쿠(仕覆)나 족자의 표구(表装), 후쿠사(袱紗) 등에 사용된 최고급 외래 직물을 통칭하는 용어이다[1][2]. 13세기 가마쿠라 시대부터 17세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비단과 면직물 조각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1][3].

어원과 개념

편집

'명물(名物)'이란 역대 저명한 다인이나 권력자가 특별한 가치를 인정하여 역사적·예술적 권위를 획득한 다도구(차이레, 차완, 가케모노 등)를 뜻한다[2][4]. 여기에 직물의 파편 혹은 조각을 뜻하는 '기레(裂)'가 결합하여 '명물에 딸린 직물 조각'이라는 의미의 명물기레라는 용어가 성립하였다[1][2][5].

다도 문화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불교 사원의 가사(袈裟)나 귀족의 의복으로 수입된 고대 직물이 주를 이루었으나, 무로마치 시대 이후 차 문화가 융성하면서 당물(唐物, 중국 수입품) 다도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한 용도로 직물이 세분화되어 향유되었다[5][6]. 찻그릇 자체의 명성 못지않게 이를 감싼 직물의 희소성과 예술성이 높게 평가받으면서, 직물 그 자체가 독립적인 감상과 수집의 대상이자 독자적인 공예 장르로 격상되었다[1][4].

역사와 전래

편집

명물기레의 대부분은 대외 무역선이나 선종 승려의 왕래를 통해 유입되었다[2][6][7]. 시기적으로는 중국의 송·원·명·청 왕조 교체기 및 남만무역(南蛮貿易) 번성기와 일치한다[7][8][9]. 다도계에서는 이들 외래 직물의 도래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격식을 매겼다[8].

  • 고와타리(古渡り): 무로마치 막부 초기부터 중기(14세기~15세기)에 걸쳐 전래된 직물로, 족자 표구용이나 최고급 차이레의 시후쿠로 사용되어 가장 격이 높게 취급된다[5][6][8].
  • 주와타리(中渡り): 무로마치 말기부터 아즈치모모야마 시대(16세기 후반) 센노 리큐의 활동기를 전후하여 수입된 직물이다[3][9].
  • 노치와타리(後渡り)·신와타리(新渡り): 에도 시대 초기(17세기) 무역 확장을 통해 유입된 직물이다[8].
  • 이마와타리(今渡り): 에도 시대 중기 이후에 들어온 직물로, 비교적 근대의 직조물에 해당한다[8].

무로마치 시대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동산문화(東山文化) 시기부터 본격적인 수집과 감정이 이루어졌으며, 에도 시대에 이르러 다이묘 다인 마쓰다이라 후마이와 같은 인물들에 의해 도록과 첩(帖) 형태로 체계화되었다[5][8].

명물기레 도식

직조 기법과 분류

편집

명물기레는 원산지와 직조 조직,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엄격하게 분류된다[2][3]. 대표적인 종류는 다음과 같다[2][6].

종류 주요 직조 특징 및 외관 대표적인 직물 명칭
금란(金襴, 킨란) 비단 바탕에 옻칠을 한 배지에 금박을 붙여 가늘게 짼 평금사(平金糸)를 위사로 넣어 화려하게 짠 직물[6][10]. 도산킨란, 스미노쿠라킨란, 하나우사기킨란[3][10]
단자(緞子, 돈스) 5매 수자직(朱子織)을 바탕으로 경사와 위사의 꼬임과 밀도를 조절해 은은한 윤택과 부드러운 질감을 낸 문직물[7]. 아라이소돈스, 리큐돈스, 슈코돈스, 사사즈루돈스[3][10]
간도(間道, 간토) 경사 또는 위사의 색채 구성을 달리하여 짠 줄무늬(縞), 격자(格子), 단(段) 무늬 직물. 주로 광둥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유래[6][9]. 요시노간도, 아오키간도, 히노간도[9][10][11]
금(錦, 니시키) 두 가지 이상의 색실(경사 혹은 위사)을 다채롭게 교차하여 부조와 같은 중후한 문양을 직조해 낸 다색 직물[6][10]. 아리스가와니시키, 슈코니시키[2][10]
풍통(風通, 후쓰) 두 겹의 경사와 위사를 사용해 표면과 이면의 직물 조직이 자루처럼 분리되는 이중직으로, 앞뒤의 배색이 반대로 드러나는 직물[6][7]. 이토야후쓰, 도쿠사후쓰[10]
쇼하(紹巴) 사문직(斜文織) 계열의 치밀한 조직으로, 표면에 미세한 능선이 형성되어 부드럽고 꺾임이 좋아 다도용 후쿠사로 널리 사용되는 직물[2]. 와쿠타쇼하, 사코쇼하[2]
인금(印金, 인킨) 실로 무늬를 짜지 않고, 얇은 사(紗)나 나(羅) 또는 비단 바탕 위에 천연 칠이나 풀을 바르고 금박을 찍어내 문양을 형성한 기법[6]. 침향호인금, 포도당초인금[6]
몰(モール, 모루) 인도 무굴 제국이나 페르시아 계열에서 수입된 직물로, 꼬인 금은사나 모사(毛糸)를 섞어 입체적인 부조감을 준 직물[4][10]. 단모루, 화훼모루[10]
사라사(更紗) 인도 및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면직물에 목판 날염이나 손그림으로 이국적인 인물·화훼·동물 문양을 염색한 직물[2][7][9]. 인도사라사, 자와사라사[2][9]

이 중에서도 금란과 단자, 간도는 명물기레를 대표하는 핵심 삼대 직조군으로 꼽힌다[4][9].

명명 체계와 대표 문양

편집

명물기레의 개별 명칭은 직물이 간직한 전래 내력과 조형적 특징에 따라 체계적인 방식으로 명명되었다[2][3].

소장자 및 다인의 인명

명물기레를 애용했거나 처음으로 다도구와 조합한 인물의 호를 붙인 사례이다[2][3].

  • 리큐돈스(利休緞子): 센노 리큐가 특별히 아끼고 사용했던 단자로, 다갈색 바탕에 국화 당초문이나 기하학적 문양이 정갈하게 배치된 직물이다[2].
  • 슈코돈스(珠光緞子): 와비차의 선구자 무라타 슈코가 소장했던 당물 차완이나 차이레의 부속 직물에서 유래하였다[3][10].
  • 엔슈킨란(遠州金襴): 에도 초기 다도가 고보리 엔슈가 명물 선정을 진행하며 다도구의 시후쿠나 표구로 지정한 화려한 금란이다[5][10].

기명(器名) 및 도구의 유래

특정 명물 다도구의 부속 주머니로 대를 이어 전해지면서 그 다도구 자체의 이름이 직물명으로 굳어진 경우이다[2][3][4].

  • 히노간도(日野間道): 무로마치 시대 관령 히노 가문에서 전래된 명물 차이레 '히노'를 감싸고 있던 줄무늬 직물이다[9][11].
  • 아라소와돈스(荒磯緞子): 거친 파도 속을 뛰어오르는 잉어(아라이소) 문양이 새겨진 단자로, 명물 도자기의 주머니로 널리 알려졌다[10].

문양 형태와 모티프

직물에 시문된 회화적 문양의 시각적 형태를 그대로 명칭으로 채택한 경우이다[2].

  • 하나우사기킨란(花兎金襴): 꽃나무 아래에 웅크리거나 뛰어노는 토끼의 형상을 감각적으로 배치한 금란으로, 명나라 시대 직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3].
  • 사사즈루돈스(笹蔓緞子): 조릿대 잎과 덩굴풀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당초문 계열의 단자이다[3][10].

소장 사찰 및 지명

직물이 보관되어 내려오던 사찰의 이름이나 수입처에서 비롯된 명칭이다[2][3][5].

  • 혼노지돈스(本能寺緞子): 교토 혼노지에 보관되어 있던 족자의 표장직물 및 전래품에서 유래하였다[10].
  • 요시노간도(吉野間道): 교토 시마바라의 유명한 예인 요시노 다유(吉野太夫)가 기모노로 입었던 격자 줄무늬 천에서 유래하여 다도계의 대표적인 간도 직물로 정착하였다[2][9].

다도 문화에서의 기능과 감상

편집

명물기레는 단순한 직물 원단을 넘어 차카이의 격조와 주인의 안목을 상징하는 핵심 매개체로 작동한다.

첫째, 농차(濃茶)를 낼 때 사용하는 차이레의 외피인 시후쿠(仕覆)로 가공된다[1][6]. 명물 차이레는 하나의 그릇에 서너 개 이상의 각기 다른 명물기레 시후쿠가 딸려 내려오는 경우가 흔하며, 계절과 손님의 격, 모임의 주제에 따라 어떠한 직물 주머니를 입힐 것인가를 결정하는 배합(토리아와세)이 다인의 중요한 기량으로 평가받는다[1][3][12].

둘째, 손님이 주인의 다도구를 가까이서 감상하는 배견(拝見) 절차에서 시후쿠가 도구 본체와 함께 석상에 놓인다. 정객(正客)은 차이레의 유래뿐만 아니라 그 차이레를 감싸고 있던 명물기레의 직조 기법, 명칭, 직물에 얽힌 역사적 내력을 차례로 묻고 주인과 문답을 나눈다.

셋째, 명물기레는 차실의 바닥벽(도코노마)에 걸리는 서화의 표구(表装) 직물로 사용되어 서화의 품격을 높인다[3][6]. 족자의 상·하단이나 테두리(이치몬지)에 금란이나 단자를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묵적(墨蹟)의 서풍을 돋보이게 만든다[6].

넷째, 작은 조각도 버리지 않고 수집하는 기레초(裂帖)와 기레단스(裂箪笥) 문화가 형성되었다[3]. 다인들은 손바닥만 한 직물 조각을 병풍이나 첩의 형태로 정갈하게 표구하여 보관하고 직물의 계보를 고증하였으며, 이는 근대적인 염직사 연구와 박물관학적 분류 체계의 토대가 되었다[3][7].

미학과 공예사적 의의

편집

명물기레는 대륙의 화려한 공예 기술과 일본 중세 다도의 절제된 미학이 결합한 산물이다[2][3]. 초기에는 금과 은이 찬란하게 빛나는 금란과 같은 호화로운 직물이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나, 중세 후기 다도가 센노 리큐에 의해 정립된 와비사비 미학의 심화와 더불어 표면의 광채가 가라앉고 담백한 단자와 격자형 간도가 차인의 각별한 선호를 받게 되었다[6][9][10]. 외양의 화려함을 감추고 내밀한 질감과 우아한 색조를 추구하는 미의식의 전환이 직물의 수용 양상에도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이다[6].

동시에 명물기레는 일본 전통 섬유 공예의 기술적 진보를 이끈 원동력이었다[8][11]. 16세기 말부터 교토 니시진(西陣)의 직조 장인들은 수입된 명물기레를 철저하게 모방하고 분석하여 독자적인 문직기(紋織機)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를 복제 직조한 우쓰시(写し) 공예가 발달하면서, 당초 귀족과 선승, 부유한 무사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고급 문양과 배색은 점차 기모노, 허리띠(오비), 전통 공예 전반으로 확산되어 근세 일본 염직 디자인의 근간을 이루었다[2][8][11].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東京国立博物館, 《名物裂: 茶の湯を彩る染織》, 東京国立博物館, 2014.
  • 京都国立博物館, 《名物裂: 時代を彩る文様》, 思文閣出版, 2007.
  • 小笠原小枝, 《名物裂類聚》, 芸艸堂, 1993.
분류: 도구

같은 분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