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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

백운동 원림(白雲洞 園林)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別墅 園林)이다[1][2]. 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담양의 소쇄원, 완도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과 함께 '호남의 3대 전통 정원'으로 손꼽히는 조경사적 명승지다[3][4].

역사와 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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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은 조선 중기의 처사 이담로(李聃老, 1627~1701)가 은거를 목적으로 조성한 공간이다[3][5]. 이담로는 고려 시대의 사찰이었던 백운암 터에 자리를 잡고 계곡 옆 바위에 '백운동(白雲洞)'이라는 세 글자를 새긴 뒤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5][6]. '백운동'이라는 이름은 월출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안개가 되어 다시 구름으로 피어오르는 비경에서 유래했다[7][8].

이담로는 만년에 둘째 손자인 이언길(李彦吉)과 함께 이곳에 기거하며 정원의 기틀을 잡았다[4]. 그는 세상을 떠나며 후손들에게 중국 당나라 문인 이덕유의 고사를 빌려 '평천장(平泉莊)'의 경계를 유훈으로 남겼다[9]. "후대에 이 정원을 남에게 파는 자는 내 자손이 아니며,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는 훌륭한 자제가 아니다"라는 엄격한 훈계를 남김으로써, 백운동 원림은 대대손손 보존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었다[9]. 이후 증손자 이의권을 거쳐 주거형 별서로 변모하였고, 이덕휘와 이시헌 등의 후손들이 정원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보수하며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시켰다[9].

백운동 12경과 《백운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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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방문이다[4][7]. 정약용은 강진 유배 시절인 1812년 9월, 초의선사 및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유람하고 하산하던 길에 백운동 원림에서 하룻밤을 유숙했다[10][11]. 정약용은 정원의 빼어난 정취에 깊이 매료되어, 그 감흥을 잊지 못하고 시를 지었으며 초의선사에게 정원의 전경을 담은 「백운동도(白雲洞圖)」를 그리게 했다[4][7]. 이를 한데 묶어 엮어낸 시화첩이 바로 《백운첩(白雲帖)》이다[4][7].

《백운첩》은 백운동 원림의 물리적 구조와 당시의 식생을 고증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사 자료가 되었다[4][6]. 정약용은 정원의 경관 중 아름다운 12곳을 골라 '백운동 12경'이라 명명하고 각각을 예찬하는 시를 실었다[4][6].

구분 명칭 한자 경관 설명
제1경 옥판봉 玉版峰 월출산 옥판봉의 상쾌한 기운[12]
제2경 산다경 山茶徑 정원으로 들어가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길[12]
제3경 백매오 百梅塢 담장 안팎에 심은 백 그루 홍매화의 향기[9][12]
제4경 홍옥폭 紅玉瀑 단풍이 비쳐 붉은 옥구슬처럼 떨어지는 폭포[12]
제5경 유상곡수 流觴曲水 마당을 굽이돌아 나가는 계곡물에 띄우는 술잔[12]
제6경 창하벽 蒼霞壁 붉은 글씨가 새겨진 푸른빛 절벽[12]
제7경 정유강 貞蕤岡 용 비늘처럼 붉은 소나무가 있는 언덕[12]
제8경 모란체 牡丹砌 화계(꽃계단)에 흐드러지게 핀 모란[9][12]
제9경 취미선방 翠微禪房 산허리에 세운 세 칸 크기의 고즈넉한 초가 사랑채[9][12]
제10경 풍단 楓壇 창하벽 위의 붉게 물든 단풍나무 제단[12]
제11경 정선대 停仙臺 옥판봉이 한눈에 조망되는 정자[12]
제12경 운당원 篔簹園 별서 뒤편의 하늘로 곧게 솟은 왕대나무 숲[12][13]

차 문화사적 가치와 다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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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은 한국 차(茶) 문화사의 중심지이자 요람이다[14]. 정약용이 백운동 원림의 후손인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백운동은 차 문화의 명소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6][15]. 정약용은 강진 유배를 마치고 남양주로 해배되어 돌아갈 때, 제자들과 해마다 차를 만들어 보내기로 약속하는 신의의 모임인 '다신계(茶信契)'를 결성했다[16][17].

이시헌은 이 약속을 평생토록 충실히 이행했다[16][17]. 그는 매년 봄마다 백운동 원림 뒤편의 제12경 운당원(篔簹園)에 자생하는 야생 차입을 정성스럽게 채취하여 스승인 정약용에게 보냈다[13][15].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아들인 정학연에게까지 차를 계속해서 보내며 다신계의 신의를 100년 이상 가문 대대로 이어갔다[15][16]. 찻잎에는 떫은맛을 내며 항산화 작용을 돕는 유효 성분인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 등의 카테킨 성분이 풍부하여 영양학적 우수성도 지니고 있었다.

이시헌이 지켰던 제다법은 정약용이 체계화한 삼증삼쇄(三蒸三灑) 기법이다[15][18]. 이는 찻잎을 세 번 찌고 세 번 말리는 과정을 거쳐 맷돌에 아주 곱게 간 뒤, 돌샘물로 정성껏 반죽하여 짓이겨 둥근 구멍이 뚫린 엽전 모양의 떡차(차병)로 성형하는 방식이다[18]. 이시헌은 또한 조선 후기 최고의 차 전문서 격인 이덕리의 《동다기(東茶記)》를 필사본으로 남겨 후대에 전달함으로써 차 문화 역사 보존에도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15][19].

백운동 원림 도식

관련 항목: 백운옥판차

최초의 상표 백운옥판차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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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으로부터 이어진 백운동의 전통 제다법은 그의 가문을 통해 대대로 보존되었다[17][20].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이 제다법은 이시헌의 후손인 이한영(李漢永, 1868~1956)에게 계승되었다[16][17].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 전역의 수많은 야생 차밭이 일본인 수중에 들어가고 한국 고유의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여 유통되는 비극적인 현실이 전개되었다[16]. 이에 분개한 이한영은 우리 차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 고유의 차 브랜드를 출시하기로 결심했다[16].

그는 백운동 원림 뒤편의 옥판봉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차라는 의미에서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라는 이름을 짓고, 목판으로 새긴 고유의 상표를 도안하여 제품에 부착했다[16][21]. 이는 한국 차 역사상 최초의 상업용 차 브랜드이자 고유 상표가 부착된 시판 차의 효시가 되었다[22].

백운옥판차는 찻잎의 크기와 수확 시기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생산되었다[16].

  • 맥차(麥茶): 보리가 익을 무렵 갓 돋아난 가장 어린 순을 따서 극소량만 제조한 최상품이다[16].
  • 작설(雀舌): 싹의 끝이 참새 혀 모양처럼 둘로 갈라진 잎으로 만든 상등품 차다[16][21].
  • 모차(矛茶): 창끝 모양처럼 세 갈래 이상으로 갈라진 잎을 활용해 만든 차다[16].
  • 기차(旗茶): 잎이 크게 자라 깃발처럼 넓어진 상태의 찻잎을 사용해 제다한 대중적인 차다[16].

이한영은 백운옥판차 포장지의 앞면에 상표인을 찍고, 뒷면에는 한반도의 형태를 무궁화 등의 꽃문양으로 도식화한 그림을 녹색 잉크로 날인했다[16][21]. 그 옆에는 '백운일지 강남춘신(白雲一枝 江南春信, 백운동 한 가지에 깃든 강남의 봄소식)'이라는 시구를 적어 넣어, 어두운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조국의 해방과 광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민족정신과 저항 의지를 차 한 잔에 담아내었다[16].

공간 구성 및 정원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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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원림은 자연의 지형과 경관을 최소한으로 가다듬고 조화롭게 배치하는 한국 전통 조경의 미학적 극치를 보여준다[7][8]. 정원은 크게 안쪽의 '내원(內園)'과 바깥의 '외원(外園)'으로 나뉘며 자연과 인공이 다투지 않고 어우러지도록 설계되었다[14][23].

내원

내원은 인간의 주거와 사유가 일어나는 내밀한 생활 공간이다[23]. 계곡 옆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3단의 석축을 쌓아 정교한 화계(꽃계단)를 형성하였다[24]. 이곳에 모란,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 등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과 고결한 지조를 상징하는 식물들을 곳곳에 식재하였다[23][24].

내원 마당에는 백운동 원림 조경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유상곡수(流觴曲水)' 유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3]. 계곡의 맑은 물을 담장 아래 구멍을 통해 정원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뒤, 마당을 아홉 굽이 돌아 흐르도록 물길을 낸 구조다[13]. 선비들은 이 굽이치는 물길에 술잔이나 차잔을 띄워 유유히 흐르게 하고, 잔이 도달하기 전 시를 지어 읊는 풍류를 즐겼다[13][23].

외원

외원은 자연의 웅장함을 정원 안으로 빌려오는 차경(借景) 기법이 절묘하게 적용된 열린 공간이다. 담장 밖 야트막한 언덕에 세워진 정선대(停仙臺)에 오르면, 아래쪽의 조밀한 내원 정경뿐만 아니라 월출산의 수려한 옥판봉의 기암괴석이 한눈에 안겨 들어온다[13]. 자연의 거대한 산봉우리를 정원의 한 요소로 시각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좁은 물리적 정원의 경계를 우주적 공간으로 확장하는 극적인 연출을 완성했다[13]. 외원 뒤편으로는 울창한 동백나무 숲과 왕대나무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외부와 정원을 차단하며 한결같이 아늑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고양한다[4][24].

같이 보기

각주

[5] ggbn.co.kr – ggbn.co.kr
[6] namu.wiki – namu.wiki
[8] m-i.kr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10] 백운첩 - DHLab – dh.aks.ac.kr
[11] nsori.com – nsori.com
[12] 백운첩 - Encyves Wiki – dh.aks.ac.kr
[14] jeollailbo.com – jeollailbo.com
[15] 이시헌 - DHLab – dh.aks.ac.kr
[17] chosun.com – weekly.chosun.com
[18] hankyung.com – hankyung.com
[19] beopbo.com – beopbo.com
[21] gjon.com – gjon.com
[22] nsori.com – nsori.com
[23] gangjintoday.co.kr – gangjintoday.co.kr

참고 문헌

  • 정약용, 《백운첩(白雲帖)》, 1812년.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강진 백운동 원림' 문화재 정보.
  • 이덕리, 《동다기(東茶記)》, 조선 후기.
분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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