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차
떡차(餠茶, 병차)는 찻잎을 시루나 가마솥에 쪄서 절구에 찧은 뒤, 떡이나 엽전 등 일정한 형태로 빚어서 건조 및 발효시킨 한국의 전통 고형차(固形茶)이다[1][2]. 모양과 쓰임에 따라 돈차(錢茶), 전차(磚茶), 단차(團茶) 등으로도 불리며,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과 향을 내는 후발효차의 일종이다[2][3].
명칭과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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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차는 찻잎을 뭉쳐 떡처럼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2]. 건조하여 완성된 고형차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구분된다[4][5].
- 돈차(전차, 錢茶): 엽전 모양으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이다[3]. 건조할 때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보관할 때 실이나 끈으로 꿰기 쉽게 하기 위해 구멍을 뚫었다[6]. 대표적으로 전라남도 장흥군의 청태전(靑苔錢)이 이에 속한다[3]. 청태전은 발효 과정에서 겉면에 푸른 이끼가 낀 것처럼 변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3].
- 단차(團茶): 둥근 달 모양으로 빚은 형태를 말한다[7].
- 전차(磚茶): 벽돌이나 누룩처럼 네모진 판자 모양으로 압착하여 만든 형태이다[4][5].
- 방차(方茶): 네모반듯하게 찍어낸 고형차다[4].
- 곶차(串茶): 꼬챙이에 꿰어 말린 떡차를 지칭한다[2].
역사적 배경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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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의 떡차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문헌과 유물을 통해 확인된다[4].
삼국시대와 고구려 무덤 출토설
일본의 차 학자 아오키 마사루(靑木正兒)는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둥글고 얇은 엽전 모양의 작은 떡차 조각을 표본으로 소장하고 있다고 그의 저서에 기록하였다[8][9]. 이 유물은 지름 약 4cm, 무게 5푼(약 1.8g) 정도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 이미 떡차 형태의 고형차가 한반도에서 음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학술적 근거로 꼽힌다[8].
고려시대의 왕실 차 문화
고려시대에는 떡차가 왕실과 귀족 사회, 국가 의례인 팔관회나 연등회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2]. 고려 왕실에서는 진다(進茶) 의식에 떡차의 일종인 **뇌원다(腦原茶)**와 **유다(孺茶)**를 주로 사용하였다[2][5]. 뇌원다는 거란과의 외교적 예물로 보내지거나 공을 세운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용, 또는 대신들의 상례(喪禮) 시 왕실에서 내리는 부의품(賻儀品)으로 애용되었다[2]. 《고려사》에 따르면 성종 때의 재상 서희(徐熙)와 문신 최량(崔亮)이 사망했을 때 왕실에서 뇌원다를 부의로 내렸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전해진다[10][11].
조선시대의 법제와 다산의 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유배지인 강진에서 차를 약용 및 수행용으로 애용하였다[12][13]. 그가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며 제자들과 결성한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에는 해마다 제자들이 스승에게 '잎차 1근과 떡차 2근'을 만들어 보낼 것을 규정하였다[14].
특히 정약용이 1830년 제자 이시헌(李時憲)에게 보낸 편지에는 백운동 원림 인근의 야생 찻잎으로 떡차를 제조하는 구체적인 제다법인 **삼증삼쇄(三蒸三曬)**의 원리가 서술되어 있다[12][15]. 다산은 기름진 음식을 덜 먹고 채식을 주로 하던 한국인의 체질에 맞춰, 강한 독성을 완화하고 위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약재 법제 방식인 삼증삼쇄(세 번 찌고 세 번 볕에 말림)와 구증구포(九蒸九曝)를 떡차 제조에 응용하였다[13][16].
제다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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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떡차 제조는 찻잎의 독성을 순화하고 장기 보관에 용이하도록 찌고 찧는 여러 단계의 공정을 거친다[13].

- 채엽(採葉): 주로 5월경 남부 해안 지방과 지리산 자락에 자생하는 야생 차나무에서 연하고 깨끗한 찻잎을 채취한다[3].
- 증제(蒸製): 수확한 찻잎을 가마솥이나 시루에 넣어 증기로 완전히 찐다[3][17]. 찌는 과정은 찻잎 속의 산화효소를 파괴하여 차 고유의 성질을 부드럽게 만들고 찻잎 조직을 무르게 유연화시킨다[17][18].
- 구타(毆打/搗): 익혀서 식힌 찻잎을 절구에 넣고 끈기가 생길 때까지 찧는다[13]. 찻잎 세포막이 파괴되면서 유효 성분이 우수한 상태로 추출될 수 있게 되며, 점성이 생겨 모양을 빚기 쉬운 상태가 된다[17][18].
- 성형(成形): 찧은 찻잎 반죽을 목형(나무 틀)에 넣어 박아내거나, 손으로 동글납작하게 빚는다[17]. 돈차로 만들 경우에는 성형 과정에서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엽전 모양으로 만든다[3].
- 건조(乾燥): 성형된 차를 햇볕이나 그늘에서 바짝 말린다. 돈차의 경우 구멍에 끈을 꿰어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 등에 매달아 말리는 것이 정통적인 방식이다[19].
- 후발효 및 숙성: 건조가 완료된 떡차는 한지에 싸서 옹기나 항아리에 담아 보관한다[19]. 최소 6개월에서 수년간 숙성시키며 미생물에 의한 후발효를 유도한다[3].
종류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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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과 음용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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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차는 잎차 형태의 일반 녹차와 달리 장기 보관성이 매우 뛰어나며, 세월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내는 노차(老茶)의 특성을 지닌다[2][20]. 수확 후 시간이 지날수록 산화와 숙성이 진행되어 떫은맛을 내는 성분들이 점차 줄어들고, 특유의 담백하고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강조된다[2].
음용 전 예열 및 구이
보관 중이던 떡차는 우려내기 전에 석쇠나 대나무 집게를 이용하여 약한 불에 노릇노릇하게 굽는 과정을 거친다[3][19]. 불에 굽는 과정은 보관 중에 유입되었을 수 있는 습기와 잡내를 완벽히 제거해 주며, 차의 구수한 향과 풍미를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3][19].
우려내는 법
주요 성분 및 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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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차는 자연적인 후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미생물의 작용 및 성분의 변화가 일어나 몸에 유익한 생리활성 물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게 된다[18].
주요 성분
- 카테킨(Catechin): 녹차의 주요 성분인 폴리페놀의 일종으로 항산화 활성이 뛰어나다[4].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카테킨 성분 중 일부가 테아플라빈 및 테아루비긴 등으로 변하여 차탕의 붉은 색상과 부드러운 감칠맛을 낸다.
-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pigallocatechin Gallate, EGCG): 카테킨 구성 성분 중 가장 강력한 항산화력을 가진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가 함유되어 있어 체내 유해한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아미노산 및 테아닌: 뇌를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테아닌 성분이 풍부하게 유지된다[4].
전통의학적 및 민간의 효능
전통 한의학 및 《본초강목》의 기록과 민간요법에 따르면, 성질이 따뜻하게 법제된 떡차는 다음과 같은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정인지 등, 《고려사(高麗史)》, 1451.
- 정약용,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 1818.
- 이시진, 《본초강목(本草綱目)》, 15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