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위키
로그인

발효

차(茶)에서 발효(Fermentation)는 찻잎에 함유된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이 산화효소에 의해 산화되거나 미생물의 작용으로 분해되는 일련의 화학적 변화 과정을 가리킨다. 이는 찻잎의 색, 향, 맛을 결정짓는 제다(製茶) 공정의 가장 핵심적인 단계이며, 발효의 정도와 방식에 따라 6대 다류(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로 분류된다[1][2][3].

어원 및 개념의 오해

편집

차의 발효는 전통적인 식품공학에서 일컫는 효모나 유산균 등 미생물에 의한 발효와는 기본 개념이 다르다.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홍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될 당시, 서양인들은 홍차 제조 과정에서 찻잎의 색과 향이 붉게 변하는 현상을 포도주나 치즈처럼 미생물 작용에 의한 발효(Fermentation)로 오인하였다. 1857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의해 발효의 정확한 생물학적 기전이 밝혀졌으나, 차 산업계에서는 이미 ‘발효’라는 용어가 관습적으로 굳어진 이후였다[4].

현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흑차와 황차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차의 발효는 미생물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 찻잎 자체의 '효소적 산화(Enzymatic Oxidation)' 과정임이 밝혀졌다[4][5]. 이는 사과를 깎아 공기 중에 두었을 때 갈변하는 현상과 동일한 화학적 원리다[4]. 엄밀하게는 '산화'로 칭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정확하나, 오늘날 전 세계 차 업계에서는 오래된 관행에 따라 산화 과정을 묶어 넓은 의미의 '발효'로 통칭하고 있다[4].

발효의 화학적 기전

편집

차의 발효 과정은 화학적 반응의 주체에 따라 크게 효소적 산화(선발효)와 미생물 발효(후발효)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6].

효소적 산화 (선발효)

채엽된 신선한 생엽에는 강한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화합물인 카테킨(Catechin)류와 이를 산화시키는 촉매 물질인 폴리페놀 옥시다아제(Polyphenol oxidase, PPO)가 세포 내 공간을 달리하여 공존한다[1][5]. 찻잎의 세포벽을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유념(비비기) 공정을 거치게 되면 갇혀 있던 폴리페놀과 산화효소가 외부 공기 중의 산소와 접촉하며 본격적인 산화 작용이 시작된다[1][4].

이때 무색투명한 단순 카테킨 성분은 산화 및 축합 반응을 거치며 황색 계열의 색소인 테아플라빈(Theaflavin)으로 일차 변환되며, 산화 반응이 심화될수록 적갈색 계열의 테아루비긴(Thearubigin)과 흑갈색을 띠는 고분자 물질인 테아브로닌(Theabrownin)으로 연속적인 변환을 이룬다[4][7]. 홍차가 가진 매력적인 붉은 수색(水色)은 바로 이 화합물 작용에서 비롯된다[4].

미생물 발효 (후발효)

흑차 등 특수 다류에서만 일어나는 진정한 의미의 생물학적 발효 과정이다. 찻잎에 고열을 가하는 살청을 통해 내부 산화효소를 완전히 불활성화시킨 뒤, 적절한 온도와 높은 습도를 제공하여 찻잎 표면에 아스퍼질러스(Aspergillus) 속 곰팡이를 비롯한 각종 외부 미생물이 자생하도록 유도한다[8][9]. 대사 과정에서 미생물이 지속적으로 분비하는 다양한 세포외 효소에 의해 찻잎 내 타닌, 단백질, 펙틴, 다당류 등이 잘게 분해되며 차의 화학 구조가 근본적으로 재편된다[10].

제다 공정에서의 발효 제어

편집

차를 생산할 때 발효를 억제할지, 촉진할지, 혹은 발효의 종류를 미생물성으로 유도할지는 생산자의 정교한 제다 기술을 통해 조절된다.

  • 살청(殺靑): 250~300℃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된 솥에 찻잎을 덖거나 고온·고압의 수증기로 쪄서 내부 산화효소의 활성을 즉각 중단시키는 공정이다[7]. 산화성 발효를 원천 차단하여 찻잎 본연의 푸른 엽록소와 신선한 향을 보존하기 위한 불발효차(녹차) 제다의 핵심이다[3].
  • 위조(萎凋)와 주청(做靑): 위조는 채엽한 찻잎을 햇볕이나 실내에 널어 수분을 증발시켜 숨을 죽임으로써 가벼운 초기 산화를 유도하는 과정이다[3]. 반발효차인 청차(우롱차)를 생산할 때에는 찻잎을 대나무 채반에 넣고 흔들어 잎 가장자리에 인위적인 마찰을 일으키는 주청 작업을 더한다. 이는 잎 가장자리의 세포벽만을 부분적으로 파괴하여 산화의 속도와 면적을 세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다[3].
  • 민황(悶黃)과 악퇴(渥堆): 미생물에 의한 후발효를 유도하기 위해 찻잎을 쌓아두고 열과 습기를 가두는 공정이다. 민황은 살청 후 찻잎을 종이나 젖은 천으로 덮고 가볍게 띄워 부드러운 맛을 끌어내는 황차 고유의 제조법이다. 악퇴는 대량의 찻잎에 물을 뿌리고 높게 무더기로 쌓아 고온다습한 인공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미생물 번식을 적극 유도하는 숙병 흑차 제조 기술이다.

발효 정도에 따른 차의 분류 (6대 다류)

편집

제다 시 산화 및 미생물 발효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느냐에 따라 찻잎은 완전히 다른 물리화학적 특성을 지니게 되며, 이를 기준으로 전 세계 차는 크게 여섯 가지의 6대 다류로 분류된다[2][3].

다류 발효도 발효 방식 특징 및 주요 품목
녹차 (綠茶) 0~5% (불발효차) 발효 억제 (효소 불활성화) 채엽 직후 곧바로 덖거나 쪄서 산화효소 활동을 영구 차단한 차. 신선한 풀향과 감칠맛, 맑은 연녹색 수색을 띤다. (용정차, 세작 등)[1][2]
백차 (白茶) 5~15% (경발효차) 자연 산화 (선발효) 살청이나 유념 공정 없이 찻잎을 자연 상태로 가만히 시들려 극도로 가볍게 산화시킨 차. 맑고 섬세한 단맛이 특징이다. (백호은침, 백모단 등)[1][2]
황차 (黃茶) 15~25% (약발효차) 미생물 약발효 (후발효) 살청 공정을 마친 뒤 고온다습한 상태로 찻잎을 쌓아두는 민황 공정을 거친 차. 구수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지닌다. (군산은침, 곽산황아 등)[2]
청차 (靑茶) 15~70% (반발효차) 부분 산화 (선발효) 잎의 가장자리 위주로 정교하게 부분 산화시킨 뒤 살청을 통해 발효를 중단시킨 차. 우롱차로 잘 알려져 있으며 난초향, 과일향 등 복합적인 향미를 낸다. (철관음, 무이암차, 대홍포 등)[2]
홍차 (紅茶) 80~100% (완전발효차) 완전 산화 (선발효) 위조와 강도 높은 유념을 거쳐 효소적 산화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차. 짙은 적갈색 수색을 띠며 몰트향, 과일향이 풍성하다. (다즐링, 아삼, 기문 등)[2][3]
흑차 (黑茶) 100% (미생물 후발효차) 외부 미생물 발효 (후발효) 살청을 마친 찻잎을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미생물의 대사 작용으로 후발효시킨 차. 오랜 기간 묵힐수록 부드러워지고 깊은 흙내음(진향)이 형성된다. (보이차, 안화흑차 등)[9]

발효에 따른 찻잎의 특성 변화

편집

발효는 찻잎의 화학적 조성을 극적으로 재배치하며, 이는 음용 시의 관능적 특성과 기능성 물질 함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색(水色)의 변화

산화 발효가 일어날 수 없도록 조치한 녹차는 생엽의 엽록소가 온전히 보존되어 연한 옥색 또는 황록색의 투명한 탕색을 유지한다.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엽록소가 파괴되고 그 자리를 테아플라빈과 테아루비긴 등 고분자 산화 화합물이 차지하면서 수색은 노란색(백차, 황차), 오렌지빛이 감도는 황금색(청차), 붉은 적갈색(홍차)으로 점진적으로 짙어진다[4]. 미생물 악퇴 발효를 심하게 거친 숙차 계열의 흑차는 아주 짙은 흑갈색 내지 검붉은 색상을 띤다[11].

향미와 질감의 형성

발효 전 신선한 찻잎은 단순 카테킨 함량이 높아 입안이 조이는 듯한 강한 수렴성(떫은맛)과 풋내를 동반한다. 발효가 깊어질수록 떫은맛을 주도하는 저분자 카테킨이 테아루비긴 형태의 고분자 화합물로 다량 뭉치게 되어 수렴성이 줄어들고 목 넘김이 한결 부드러워진다[4]. 아울러 산화와 미생물 대사 과정에서 고분자 단백질과 불용성 다당류가 분해되며 수많은 휘발성 방향족 화합물과 수용성 당류로 전환되는데, 이는 청차가 뿜어내는 다채로운 꽃향기나 홍차의 벌꿀향, 흑차가 지닌 진향(陳香)을 생성하는 원동력이 된다[11].

영양 및 효능 성분의 전환

현대 의학 및 영양학에서 주목하는 차의 주요 생리활성 기전은 항산화 작용이다. 열을 가해 산화 발효를 억제한 녹차는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GCG)를 위시한 단순 형태의 카테킨 함유량이 6대 다류 중 가장 높다[7]. 반면 홍차처럼 오랜 산화 발효 공정을 거친 차는 유리된 상태의 원형 카테킨 함량이 현저히 감소하는 대신, 산화 과정 중 새롭게 축합된 테아플라빈 및 테아루비긴이 그 항산화 능력을 훌륭히 대체한다[4][7]. 이들 물질은 인체 내 산화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유해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데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 산화 및 미생물 발효를 긴 시간 거치더라도 찻잎 고유의 알칼로이드 성분인 카페인의 화학 구조 자체는 내열성과 안정성이 뛰어나 크게 파괴되지 않으므로, 차의 탕색이 짙고 발효도가 높다고 하여 절대적인 카페인 함량 수치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김종태, 《차의 과학》, 대광서림, 2004.
  • 정동효, 《차의 화학과 효능》, 홍문관, 2005.
  •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
분류: 방법

같은 분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