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본초
신수본초(新修本草)는 659년(당 고종 현경 4년) 중국 당나라 조정의 칙명에 따라 소경(蘇敬) 등이 편찬한 세계 최초의 국가 공인 약전(官修藥典)이다. 당나라 때 편찬된 본초서라는 뜻에서 《당본초(唐本草)》, 또는 편찬 총괄자였던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의 작위를 따 《영공본초(英公本草)》라고도 불리며, 차(茶)가 단순한 민간 식물이나 지역성 음료를 넘어 국가 표준 차원에서 성질과 효능을 공인받는 결정적인 문헌적 전기를 마련하였다.
편찬 배경과 의학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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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중엽 당나라는 국가적 통일을 완성하고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교역과 남방 정벌을 추진하면서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에 따라 서역과 남만(南蠻) 등지로부터 수많은 외래 약물이 유입되었고, 각 지방마다 자생하는 약초의 채취와 유통이 활발해졌다. 그러나 당시 널리 쓰이던 남북조 시대 양나라 도홍경(陶弘景)의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약 730종 수록)는 편찬된 지 160여 년이 흘러 누락된 약물이 많았고, 민간 전승 과정에서 명칭의 오류와 위품(僞品) 혼용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657년 감문부 장사(長史) 소경(蘇敬, 蘇恭)은 기존 본초서의 오류를 바로잡고 국가 차원의 통일된 약학 표준을 제정할 것을 당 고종에게 상소하였다. 당 조정은 이를 수용하여 당시 사공(司空)이자 영국공이었던 이적을 총재관(總裁官)으로 임명하고, 장손무기(長孫無忌)와 허경종(許敬宗) 등 고위 관료를 비롯해 태의서(太醫署) 소속 의관과 박사 23명을 소집하여 대대적인 편찬 사업에 착수하였다.
당 조정은 칙령을 내려 전국 350여 주(州) 관아에 관할 지역의 대표적인 실물 약재 표본과 자생 식물의 채색 세밀화를 장안(長安)으로 진상하도록 명하였다. 편찬단은 수집된 실물 표본을 바탕으로 형태, 산지, 생태, 채취 시기, 가공법, 약효를 교차 검증하였으며, 2년여의 작업 끝에 659년 정식으로 국가 약전을 완성하여 반포하였다. 이는 서양 최초의 관수 약전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누오보 레셉타리오》(Nuovo Receptario, 1498년)보다 839년 앞선 것으로, 국가 권력이 주도하여 표준 약물 규격을 제정·반포한 세계 의학사상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구성과 체재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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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본초》는 본문 20권(목록 1권 별도), 약물의 실물 형태를 정밀 묘사한 《약도(藥圖)》 25권(목록 1권 별도), 약도의 세부 해설과 산지 및 감별법을 적은 《도경(圖經)》 7권 등 총 53권(목록 포함 54권)으로 구성되었다. 이전 본초서가 문자에만 의존하여 약재 형태를 서술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정밀한 채색 도해를 결합한 '도문병기(圖文並記)' 체재를 세계 최초로 제도화하였다.
수록 약물은 총 844종(혹은 판본에 따라 850종)에 달한다. 이는 《신농본초경집주》의 730종에서 중복과 오류를 정리하고, 새로이 114종의 신증(新增) 약물을 추가한 것이다. 특히 실크로드 무역을 통해 유입된 호초(후추), 안식향, 용뇌, 가자 등 외래 약물이 대거 편입되었으며, 차(茗·苦茶)를 비롯한 남방 특산 식물의 약재적 지위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차(茶) 관련 기록과 내용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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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본초》가 편찬되던 당대 초기는 오늘날 통용되는 한자 '차(茶)'가 완전히 정착되기 전으로, '명(茗)'이나 '도(荼)'라는 고대 명칭이 혼용되던 시기였다. 《신수본초》 권14 목부(木部) 중품(中品)에서는 '명(茗)'을 표제어로 삼고 별칭을 '고차(苦茶)'라 명시하였으며, 권18 채부(菜部)의 전통적인 '고다(苦荼)' 조문을 상호 참조하도록 체재를 구성하였다.
명칭과 성미
《신수본초》 목부의 해당 조문에서는 찻잎의 성질과 맛(성미, 性味)을 다음과 같이 공식 규정하였다.
"명(茗)은 고차(苦茶)이다.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약간 차고 독이 없다(味甘苦,微寒,無毒)."
맛을 '감(甘)'과 '고(苦)'로, 성질을 '미한(微寒)'으로 정립한 것은 한의학의 음양오행 및 기미론(氣味論) 관점에서 차의 특성을 정의한 것이다. 쓴맛은 기운을 굳히고 화기를 내리며(청열, 淸熱), 단맛은 기운을 보하고 완화하며, 약간 찬 기운은 몸 안의 울체된 열을 식히고 진액을 생성하는 작용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주치 효능과 현대 약리학적 비교
《신수본초》는 차의 주요 치료 효능(주치, 主治)으로 다음과 같은 항목을 명시하였다.
"누창(瘻瘡)을 주치하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利小便), 가래와 열로 인한 갈증을 없애고(去痰熱渴),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적게 자게 한다(令人少睡). 가을에 채취한 고차는 기를 내리고(下氣) 묵은 체기를 삭인다(消宿食)."
이러한 고대 본초학적 효능 기록은 현대 차 생화학 및 약리학 연구를 통해 유효 성분의 작용 기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 《신수본초》 기록 효능 | 전통 한의학적 해석 | 현대 약리학적 주요 연관 성분 및 기전 |
|---|---|---|
| 영인소수(令人少睡) | 정신을 맑게 하고 졸음을 쫓음 | 카페인(Caffeine) 성분이 뇌 속 아데노신 수용체를 차단하여 중추신경계 각성을 유도하고 피로 해소에 기여함 |
| 이소변(利小便) | 체내 수분 대사를 원활히 하고 노폐물을 배출함 | 카페인 및 테오브로민(Theobromine)이 신장 사구체 혈류량을 늘리고 신세뇨관 재흡수를 억제하여 이뇨 작용을 촉진함 |
| 거담열갈(去痰熱渴) | 가슴에 맺힌 담열을 식히고 구갈을 해소함 | 카테킨 등 폴리페놀 화합물의 항염 작용과 유기산 성분이 타액 분비를 자극하여 구강 건조를 완화함 |
| 소숙식·하기(消宿食·下氣) |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 내 체기를 삭여 기운을 내림 | 탄닌 및 폴리페놀 화합물이 담즙 및 소화 효소 분비를 촉진하고 위장관 연동 운동을 조절하는 데 관여함 |
| 주누창(主瘻瘡) | 만성 궤양, 종기, 림프절 부스럼의 치료를 도움 |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GCG)를 비롯한 카테킨류의 강력한 항균·항염 및 조직 수렴(收斂) 작용에 기인함 |
채취 시기와 당대 초기 음다법
채취 시기에 관해서는 "가을에 채취한다(秋采之)"라고 명시하면서 협주(夾注)로 "봄에 채취한다고도 한다(注云:春采之)"라는 기록을 덧붙였다. 이는 봄에 일찍 돋아난 어린 싹을 따는 '조채(早採)'와 여름·가을에 성숙한 잎을 따는 '만채(晚採)'에 대한 당시 약재 수집 관행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음용 방식에 관해 "음료로 만들 때 수유(茱萸), 파(蔥), 생강(薑) 등을 넣으면 좋다(作飲加茱萸、蔥、薑等,良)"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당나라 초기까지만 해도 차가 순수한 기호 음료라기보다는 약효를 극대화하거나 소화를 돕기 위해 강한 자극성 향신 약재를 함께 넣고 끓여 마시던 전통적인 '갱음(羹飲)' 또는 탕제(湯劑) 복용 형태였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료이다.
육우 《차경》과의 관계 및 다도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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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본초》가 편찬된 지 약 1세기 후인 8세기 후반, 당나라의 육우(陸羽)는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인 《차경(茶經)》을 저술하였다. 육우는 《차경》 제7장 <칠지사(七之事)>에서 차의 학술적 근거와 약리적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신수본초》(목부 및 채부 조문)를 핵심 의학 사료로 충실히 인용하였다.
그러나 음다법에 있어서 육우는 《신수본초》에 기록된 당대 초기의 조미 탕차법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육우는 《차경》 제5장 <오지자(五之煮)>에서 차를 달일 때 파, 생강, 대추, 귤껍질, 수유 등을 함께 넣고 끓이는 행위를 가리켜 "도랑의 버려진 구정물과 같다(斯溝渠間棄水耳)"고 비판하며, 찻잎 본연의 맑은 향과 담백한 맛을 감상하는 독자적인 탕법을 주창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차의 위상이 《신수본초》를 통해 '국가 공인 의약품 및 약용 탕음'으로 확립된 뒤, 육우의 《차경》을 거치며 심미적·철학적 가치를 지닌 '독립된 기호 음료 및 다도 예술'로 진화해 나갔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반도 유입과 동아시아 의약·차 문화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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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본초》는 반포 직후 나당 간의 활발한 문물 교류를 통해 통일신라에 신속하게 전래되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0 잡지 직관하(職官下) 조에 따르면, 통일신라 국립 교육 기관의 의학박사(醫學博士)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핵심 교재로 《본초경(本草經)》이 지정되어 있었는데, 의학사학계에서는 이를 당시 당나라의 표준 교과서였던 《신수본초(당본초)》로 파악하고 있다.
신라 사회에서 차가 널리 음용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러한 관찬 본초서를 통한 약리 지식의 보급이 크게 기여하였다. 신라의 승려와 귀족 계층은 차를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머리를 맑게 하고 수마(睡魔)를 쫓으며 내장을 조화롭게 하는 선약(仙藥)이자 수행의 보조물로 인식하였다. 828년(흥덕왕 3년)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차 종자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기 이전부터 원효(元曉)나 보천(寶川) 등의 차 관련 일화가 전해지는 것은 《신수본초》 등을 통해 차의 의약학적 가치가 일찍이 수용되어 있었음을 방증한다.
고려 시대에도 《신수본초》는 국자감과 전의시(典醫寺)의 의관 선발 시험(의과)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송대 《증류본초(證類本草)》를 거쳐 조선 초기의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 의서에서 다룬 차의 성미와 주치 효능은 《신수본초》의 규정을 근간으로 계승되었다.
일본 역시 헤이안 시대 다이호 율령(大寶律令, 701년)의 전의료(典醫療) 교육 과목으로 《당본초》를 채택하였으며, 사가 천황(嵯峨天皇) 시기 초기 일본 차 문화의 유입과 약용 관념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판본과 현대적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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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본초》의 원본은 오대십국의 전란과 송나라를 거치며 약도 25권과 도경 7권이 먼저 실전(失傳)되었다. 본초 본문 또한 북송 대에 이를 개정한 《개보본초(開寶本草)》와 《증류본초》 등에 흡수되면서, 중국 본토에서는 독립된 서책으로서의 전질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견당사(遣唐使)와 유학승들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의 필사본들이 교토 닌나지(仁和寺) 등 주요 사찰과 서고에 보존되었다. 닌나지 소장본(권4, 권5, 권12, 권13 등 잔권)은 당대 원형의 편찬 체재와 협주를 고스란히 간직한 현존 최고의 실물 필사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20세기 이후 중국의 본초학자 상지균(尙志鈞)과 일본의 오카니시 다메토(岡西爲人) 등은 닌나지 잔권본과 돈황 석굴에서 출토된 돈황본 잔간(殘卷), 그리고 《증류본초》와 고대 의서에 인용된 일문(佚文)을 정밀하게 대조·수집하여 《신수본초집주(新修本草輯注)》를 펴냄으로써 세계 최초의 공인 약전이자 차사(茶史)의 핵심 문헌인 《신수본초》의 원형을 학술적으로 복원해 내는 데 성공하였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상지균(尙志鈞) 집주, 《신수본초집주(新修本草輯注)》, 안휘과학기술출판사, 1981.
- 육우, 《차경(茶經)》, 760년경.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
-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