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범술
최범술(崔凡述, 1904~1979)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불교 승려, 정치가, 교육자이며, 광복 이후 단절 위기에 놓였던 전통 차문화를 발굴·체계화하여 중흥을 이끈 현대 한국 다도(茶道)의 선구자이다. 법명은 범술, 호는 효당(曉堂)으로, 경상남도 사천 다솔사(多率寺)를 중심으로 자생 차나무를 가꾸고 제다법을 정립하는 한편 1973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차 개론서인 《한국의 다도(韓國의 茶道)》를 저술하여 '현대 차문화의 중흥조'로 평가받는다.
생애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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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6월 경상남도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났다. 1916년 12세의 나이에 사천 봉명산 다솔사로 출가하여 김포허(金抱虛)를 은사로 득도하였다. 청년기에는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만해 한용운(韓龍雲)의 지도를 받으며 1930년 조선불교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항일 비밀결사인 만당(卍黨)의 결성을 주도하여 경상남도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다이쇼대학(大正大學) 불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재일 기간 중 박열(朴烈) 등과 함께 흑도회, 흑우회, 불령선인사 등을 조직하여 항일 무정부주의 및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수차례 투옥되었다. 이러한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광복 후에는 사회와 교단의 재건에 참여하였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사천군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기여하였다. 교육 사업에도 힘을 쏟아 국민대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해인사 주지와 학교법인 해인학원 이사장으로서 해인중학교, 해인고등학교, 해인대학(현 경남대학교)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1960년대 중반 정계와 교단의 전면에서 물러난 뒤 다솔사로 돌아와 차문화 중흥에 매진하였다. 원효의 사상을 연구하는 동시에 사찰 후원의 야생 차밭을 복원하고 제다 실천에 몰두하였다. 당시 다솔사는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등 문인과 학인들이 모여 민족정신과 예술, 차를 토론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1979년 7월 10일 다솔사에서 세수 76세, 법랍 63세로 입적하였다.
다도 철학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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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당 최범술의 다도관은 불교의 선(禪) 사상과 원효의 무애(無㝵) 정신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활 속에서 참된 자성을 찾는 실천적 차살림을 추구하였다.
차도무문
차도무문(茶道無門)은 효당 다도 철학의 핵심 명제이다. 차의 길에는 안팎을 가르는 문이 없다는 뜻으로, 차를 마시는 행위가 특정한 계급이나 권력, 엄격한 형식주의에 구속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부처와 중생이 본래 다르지 않다는 불교적 평등관에 입각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일상에서 편안하게 차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였다. 이는 권위적이고 현학적인 차 문화를 비판하고 대중화를 지향한 선언이었다.
다선일미와 삼매다례
차를 끓이고 마시는 일상사가 곧 마음의 번뇌를 쉬게 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참선과 통한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강조하였다. 찻물을 익히고, 차를 우리며, 잔을 비우는 행다(行茶)의 과정에서 잡념을 끊고 지극한 평정심에 도달하는 경지를 '삼매다례(三昧茶禮)'로 명명하였다. 복잡한 격식 대신 동작 하나하나에 온전한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적 음다관을 체계화하였다.
차도용심과 보은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인 차도용심(茶道用心)에서는 지극한 정성(誠)과 은혜에 보답하는 보은(報恩)의 태도를 역설하였다. 찻잎을 길러낸 천지자연과 찻물을 길어 올린 이웃의 노고에 감사하며, 부모·스승·국가·중생의 은혜를 되새기는 사은(四恩) 사상을 차 한 잔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한국의 다도》와 고전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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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8월 보련각(寶蓮閣)에서 출간된 《한국의 다도》는 근현대 한국인이 저술한 최초의 본격적인 차 종합 개론서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통 차문화가 단절되고 외래 차 문화가 유입되던 시기에, 민족 고유의 차 역사와 음다 전통을 복원하려는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이 책은 한국 차사(茶史)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음다 기록을 정리하였으며, 중국의 육우가 쓴 《다경(茶經)》이나 송나라 휘종의 《대관다론(大觀茶論)》 등 동아시아 차 고전과 비교하여 한국 차의 독자적 풍류 정신을 변증하였다.
특히 조선 후기 초의선사(草衣禪師) 의순(意恂)이 지은 《동다송(東茶頌)》과 《다신전(茶神傳)》을 수록하고 상세한 현대어 번역과 주석을 최초로 제공하였다. 효당은 1930년대 다솔사에 전해 내려오던 초의의 친필 전적을 발굴·수습해 두었다가 이 책을 통해 세상에 공개하였다. 이를 계기로 초의선사가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재조명받게 되었으며, 근현대 차학 연구의 표준 원전으로 확립되었다.
제다법과 반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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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가 자리한 사천 봉명산 일대의 자생 차나무 군락을 직접 관리하며 전통 제다법을 복원하였다. 효당이 정립한 차는 '지혜의 이슬'이라는 뜻의 '반야로(般若露)'라 불린다. 차를 마심으로써 무명(無明)의 번뇌를 걷어내고 맑은 지혜를 증장한다는 불교적 염원을 담은 명칭이다.
반야로는 무쇠솥에 찻잎을 덖어 살청하는 통상적인 초청녹차와 달리, 시루의 증기로 찻잎을 쪄내는 증제(蒸製) 방식을 기본 축으로 삼았다. 이를 '정제증차(精製蒸茶)'라 불렀으며, 풋내를 제거하면서도 찻잎의 신선한 향기와 담백한 맛, 맑고 청아한 다색을 온전히 살려내는 데 주력하였다.

반야로의 주요 공정은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 채엽: 늦봄 봉명산 자생 차밭에서 갓 돋아난 어린 찻잎을 선별하여 손으로 채취한다.
- 증제 살청: 끓는 물의 증기가 올라오는 시루에 찻잎을 얹고 순간적으로 쪄내 산화효소의 활성을 억제한다.
- 유념: 쪄낸 찻잎을 식힌 뒤 멍석 위에서 일정한 압력으로 비벼 잎의 조직을 적절히 파쇄하고 수분을 분산시킨다.
- 배화 및 건조: 온돌이나 화로의 은은한 온열 위에서 찻잎을 고루 뒤집어가며 수분을 5% 미만으로 건조하고 향미를 완성한다.
| 구분 | 반야로 (정제증차) | 덖음녹차 (초청녹차) |
|---|---|---|
| 살청 방식 | 시루를 이용한 고온 증기 살청 (증제) | 무쇠솥에 직접 열을 가해 덖음 (초청) |
| 향미 특성 | 담백하고 은은하며 순수한 감칠맛 | 구수하고 볶은 향이 강조된 풍미 |
| 탕색 (다색) | 맑고 푸른 연초록빛 유지 | 황록색 내지 은은한 담황색 |
| 제작 배경 | 효당 최범술이 다솔사에서 체계화 | 사찰 및 민간에서 널리 전승된 전통 방식 |
다기관과 음다 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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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이나 사치스러운 기교를 엄격히 경계하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소박한 다기 사용을 권장하였다. 다기는 차의 고유한 성품을 훼손하지 않고 차인을 평온하게 이끄는 도구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솔사 주변과 영남 일대의 가마터를 주목하며, 조선 사기장들이 빚어낸 거칠면서도 따뜻한 분청사기 다완을 애용하였다. 한편 찻물의 빛깔인 다색을 왜곡 없이 관찰하고 순수한 차맛을 음미하기 위한 기물로는 군더더기 없는 순백의 백자 다기를 높이 평가하였다.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한 조선 백자의 담백함이 차도무문의 정신과 상통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음다 예법에서는 과거 고려와 조선의 궁중 및 대형 사찰에서 행해졌던 장엄한 진다례 의식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된 현실을 인식하고, 현대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결한 생활 다례를 제시하였다. 차를 우리는 사람은 물을 알맞게 끓여 찻잎의 성품에 맞추고, 차를 마시는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며 도를 닦는 '간 맞추어 마시는 차살림'을 추구하였다.
계승과 현대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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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전국 단위 차인 단체인 '한국다도회(한국차도회)'를 결성하여 현대 한국 차문화 운동의 기폭제를 마련하였다. 각계 지식인과 차 애호가를 규합하여 강습회와 시음회를 열고, 잊혀가던 차 생활을 근대 시민사회의 교양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효당의 제다법과 다도 정신은 맏상좌이자 제자인 채정복(반야로차도문화원 원장) 등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효당 문하의 계승자들은 '반야로 선차도(禪茶道)'를 통해 차를 통한 명상과 수양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차문화사학계에서 효당 최범술은 일제강점기 이후 멸실 위기에 놓였던 고유의 차문화를 사상사적·문헌학적으로 복원한 중흥조로 널리 공인받는다. 한편 그가 정립한 '다도(茶道)'라는 명칭 사용이나 행다의 일부 절차가 일본 유학 시절 접한 근대 일본 다도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적 고찰도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당대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파괴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우리 차의 정통성을 세우고자 분투했던 과도기적 모색이자, 한국적 주체성을 정립해 가는 치열한 역사적 과정으로 균형 있게 평가되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최범술, 《한국의 다도》, 보련각, 1973.
- 한국학중앙연구원, 〈최범술(崔凡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훈록: 최범술〉, 공훈전자사료관.
- 대한민국 헌정회, 〈역대 국회의원: 최범술(崔凡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