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
초청(炒靑)은 찻잎을 고온의 솥에서 덖어 열을 가하는 중국과 한국의 전통 제다법이자 그 가공 과정을 의미한다. 주로 찻잎 내부의 산화 효소를 열로 파괴하여 녹색과 영양 성분을 보존하는 살청(殺靑)의 수단으로 쓰이며, 유념 과정을 거친 찻잎을 최종적으로 솥에서 덖어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법을 뜻하기도 한다[1].
초청 과정을 거쳐 완성된 녹차를 초청녹차(炒靑綠茶)라 부르며, 덖음 특유의 고소한 풍미와 깔끔하고 산뜻한 맛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어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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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적 의미와 기원
초청은 '볶을 초(炒)'와 '푸를 청(靑)'이 결합하여 '찻잎의 푸른 빛깔과 생기를 가마솥에 덖어 고정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1]. 중국의 고대 제다법은 위진(魏晉) 시기의 햇볕 건조 방식인 쇄청(曬靑), 당(唐)·송(宋) 시대의 증기 가열 방식인 증청(蒸靑) 위주로 발전하였다[2]. 그러나 고온의 증기로 찌는 증청 방식은 가공 과정이 복잡하고 완성된 단차(덩어리차)나 가루차에서 쓴맛이 강하게 나며 향기가 충분히 발현되지 못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2].
명나라 시대의 완성
덖음 제다법인 초청은 남송(南宋) 시대에 싹을 틔운 뒤 명나라(1368~1644) 시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며 완전히 보편화되었다. 특히 1391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백성의 노고를 덜기 위해 단차 제조를 전면 금지하고 잎차(산차) 형태로 차를 공납하도록 명하면서 잎의 원형과 향미를 살리는 초청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명대의 차 전문 문헌인 서유(徐蚴)의 《차고(茶考)》와 심덕부(沈德符)의 《야획편보유(野獲篇補遺)》 등에서도 찌는 증청 제다법에서 덖는 초청 제다법으로의 보편적인 변화 흐름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3].
한국 제다사에서의 계승
한국의 차 역사에서도 초청법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조선 후기의 다성(茶聖) 초의선사는 초기에 증청식 떡차를 연구하고 생산했으나, 점차 가마솥에서 직접 덖는 초청법을 수용하여 자신만의 덖음 제다법을 정립해 나갔다[4].
이러한 제다 전통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시절 전남 강진의 백운동 원림과 인근 다산초당에서 제자 이시헌 등에게 전수한 제다 기술과도 연결된다[5][6]. 이는 훗날 일제강점기 시절 이한영에 의해 한국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로 계승되었다[5][6]. 이한영은 찻잎의 발육 상태와 채엽 시기에 따라 열처리의 불기운을 정교하게 조절하였는데, 여린 잎은 낮은 불에 살짝 덖고 넓게 자란 잎은 시루에 찌는 등 증청과 초청을 영리하게 혼용하는 지혜를 보였다[7][8].
공정상 역할과 화학적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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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은 제다 과정 중 크게 살청 단계와 건조 단계에서 각각 중요한 도구로 기능한다.
살청 단계에서의 초청
수확한 생찻잎에는 폴리페놀 옥시다아제(Polyphenol Oxidase, PPO)를 비롯한 각종 산화 효소가 함유되어 있어, 그대로 방치하면 산소와 결합하여 찻잎이 붉게 변하는 갈변 현상(산화)이 일어난다.
덖음살청(초청살청)은 고온으로 달구어진 가마솥(평평한 평과 또는 비스듬한 사과)에 생찻잎을 넣고 빠르게 뒤집어가며 열을 가하는 과정이다[1]. 찻잎의 내부 온도를 극히 짧은 시간 안에 85℃ 이상으로 급속히 끌어올려 단백질 효소의 활성을 완전히 차단한다[1]. 이를 통해 차의 산화 정도, 즉 발효도를 0%에 가깝게 통제하여 녹차 고유의 선명한 녹색과 성분을 유지시킨다[1]. 동시에 열에 약한 찻잎의 풋내(청미) 유발 물질을 휘발시키고, 수분을 일부 증발시켜 후속 공정인 유념(揉捻, 비비기) 시 잎이 찢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잘 뭉치도록 조직을 연화시킨다[1].
건조 단계에서의 초청
살청과 유념을 거친 찻잎의 수분을 최종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에서도 초청이 사용된다. 중국의 제다 분류 기준에서는 최종 건조를 솥에서 덖어서 끝내는 녹차를 '초청녹차'로 정의한다. 가마솥의 잔열을 이용해 찻잎을 굴리며 수분 함량을 3~5% 수준까지 떨어뜨리는 이 과정은 수분을 안전하게 제거하여 곰팡이나 변질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유념 과정에서 잎 겉면으로 흘러나온 찻즙을 건조하며 표면에 흡착 및 고정해 준다. 이로 인해 차를 우려낼 때 성분이 보다 일관되게 고르게 용출될 수 있다.
초청녹차의 종류와 형태적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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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건조 공정에서 찻잎을 어떻게 굴리고 누르며 성형(정형)하느냐에 따라 완성된 초청녹차는 다양한 외형적 특징을 지니게 된다[9].
- 장초청(長炒靑): 건조 과정 중 찻잎을 길게 비벼 늘려 완성한 형태로, 뒤틀린 막대 모양이나 가늘고 긴 눈썹 형상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종류로 눈썹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미차(眉茶) 계열이 있으며, 북아프리카 일대로 수출되어 널리 소비된다[9].
- 원초청(圓炒靑): 찻잎을 둥글게 굴려서 단단한 알갱이 형태로 가공한 것이다[9]. 마치 화약이나 진주알 같다고 하여 주차(珠茶)라고도 불리며, 향기가 높고 맛이 진하여 여러 번 우려마실 수 있는 강력한 내포성을 자랑한다[9].
- 편초청(扁炒靑) / 세눈초청(細嫩炒靑): 여린 단일 싹이나 일아일엽의 어린 잎을 채취하여 만드는 고급 초청녹차이다[9]. 가마솥 바닥에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눌러가며 형태를 평평하고 곧게 펴는 방식으로 제다한다[2]. 중국의 10대 명차 중 하나인 서호용정(西湖龍井)이 대표적이며, 잎이 나선형으로 권곡되어 소라 모양을 띠는 벽라춘(碧螺春) 또한 이 범주에 포함된다[10].
다른 제다 방식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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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은 녹차를 가공하는 다른 3대 제조 방식인 홍청(烘靑), 쇄청(曬靑), 증청(蒸靑)과 뚜렷이 대비되는 물리화학적 특징을 보인다.
| 구분 | 초청 (炒靑) | 홍청 (烘靑) | 쇄청 (曬靑) | 증청 (蒸靑) |
|---|---|---|---|---|
| 핵심 공정 | 가마솥에 직접 덖고 건조함 | 숯불이나 온풍기로 열풍 건조함 | 햇볕에 자연 건조함 | 뜨거운 증기로 쪄서 살청함 |
| 외형 특징 | 덖는 과정의 마찰로 백호가 누워 있거나 정돈됨[2] | 하얀 솜털(백호)이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유지됨[11] | 거칠고 잎의 형태가 다소 균일하지 않음 | 엽록소가 잘 보존되어 짙고 선명한 녹색을 띰[11] |
| 풍미 | 구수하고 달콤하며 솥맛(부화향)이 강함[12] | 깔끔하고 상큼하며 꽃향 흡착력이 우수함[11][13] | 풀 비린내가 일부 남아있고 떫은맛이 다소 강함 | 신선한 풀 내음(녹음향)이 도드라지며 부드러움 |
| 대표 차종 | 서호용정, 벽라춘, 몽정감로[2][10] | 황산모봉, 태평후괴, 자스민 화차의 모차[11][13] |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운남쇄청모차[14][15] | 일본의 센차, 교쿠로 |
특징과 성분 및 인체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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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적 풍미
초청 제다법을 적용한 차는 가마솥 벽면의 높은 열과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미량의 유기 화합물들이 열분해를 일으켜 고소하고 깊은 '솥맛(부화향, 釜香)'을 강하게 발산한다[12]. 제대로 제다된 초청녹차는 수색이 맑은 비취빛 내지 연한 황록색을 띠며, 입안에서 구수한 단맛과 개운한 여운을 남긴다[16]. 오룡차(청차) 제조에서도 초청 공정은 이전 위조와 주청 단계에서 형성된 화려한 난꽃 향을 고정하고 풋내를 없애는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17][18]. 청차는 전통적으로 화려한 향과 맛을 만끽하기 위해 개완을 활용한 공부다예 방식으로 널리 음용된다[9].
성분의 변화 및 효능
덖음 방식을 거치는 과정에서 생찻잎의 주요 유익 성분인 카테킨류가 열에 의해 과도하게 산화되지 않고 보존된다[9]. 특히 녹차에 풍부하게 함유된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pigallocatechin gallate, EGCG)와 폴리페놀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활성을 지닌다[9]. 이러한 성분들은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개선하여 심혈관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테아닌 성분이 풍부해 뇌의 알파파 발생을 유도하여 긴장을 완화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다 시 주의점
초청은 불기운을 뜻하는 화후(火候) 조절이 제다의 성패를 가른다. 가마솥의 온도가 너무 낮으면 살청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져 산화 효소가 일부 잔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차에서 비린 잡미가 나거나 탕색이 탁해질 수 있다[1]. 반대로 솥의 온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찻잎을 굴려주는 속도가 느리면 잎끝이 타버려 탕색이 황색으로 짙어지며 매캐하고 탄내가 섞인 떫은맛이 강해지므로 고도의 숙련된 손기술과 세심한 불 조절이 요구된다[12].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서유(徐蚴), 《차고(茶考)》, 1613년
- 심덕부(沈德符), 《만력야획편(萬曆野獲編)》, 1606년
- 의순(意旬), 《동다송(東茶頌)》, 183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