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헌
이시헌(李時憲, 1803~1860)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다인(茶人)으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막내 제자이자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白雲洞 別墅庭園)의 5대 동주(洞主)이다[1][2]. 그는 스승 정약용과 맺은 차에 대한 약속을 평생토록 실천하고 대를 이어 가문에 계승시켰으며, 한국 최초의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가 탄생하는 제다 기술적·문화적 토대를 마련하였다[3][4].
생애와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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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의 자는 대아(大雅), 호는 자이당(自怡堂)이다[5].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에 위치한 유서 깊은 전통 원림인 백운동 별서정원의 5대 주인으로 삶을 보냈다[2]. 그는 백운동 4대 동주였던 이덕휘(李德輝)의 조카(아우 이석휘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들이 없었던 이덕휘의 양자로 입적되어 종가의 대를 이었다[2].
이시헌은 백운동 문중의 역사를 정리하고 학술적 토대를 닦은 중흥조로 평가받는다[1][2]. 그는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선대의 문집과 행록을 정리하여 책자로 엮어냈으며, 백운동에 전해오는 역대 명사들의 시문을 모아 『백운세수첩(白雲世守帖)』을 편집하였다[2]. 또한 자신의 문집인 『자이집(自怡集)』에 백운동의 14경을 노래한 시와 정원에서의 일상을 상세히 기록하여 조선 후기 남도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 양식을 후대에 전하였다[1][2].
정약용과의 사제 인연과 다신계(茶信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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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의 삶과 차 문화사적 공헌은 다산 정약용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1]. 1812년 가을, 강진 유배 시절의 정약용은 제자 초의선사(艸衣禪師), 윤동 등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한 후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백운동 별서정원에 들르게 되었다[2][6]. 당시 9세의 어린 나이였던 이시헌은 의관을 정제하고 예의를 갖춰 정약용 일행을 맞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다산의 가장 나이 어린 제자가 되었다[1][7].
1818년 정약용이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경기도 광주 마재로 돌아가게 되자, 다산초당의 제자들은 스승과의 학문적 끈을 놓지 않고 신의를 지키기 위해 다신계를 결성하였다[8][9]. 이 서약의 핵심은 매년 봄에 햇차를 만들어 스승에게 보내고 그간 공부한 글을 나누는 것이었다[10][11]. 결성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이시헌은 나이가 어려 공식 계원의 문서인 '다신계절목'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으나, 실질적으로 이 약속을 평생에 걸쳐 가장 충실하게 이행한 인물이었다[9][12].
정약용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시헌은 약속을 멈추지 않았다[10][13]. 그의 차 수송은 다산의 아들인 정학연(丁學淵), 정학유(丁學游) 대까지 이어졌으며, 이시헌의 후손들 역시 가업으로 차를 만들어 다산가에 지속해서 보냈다[1][9]. 이 사제 간의 차 배달은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속되며 한국 차 문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의(信義)'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10][13].
삼증삼쇄(三蒸三曬) 제다법의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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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이 스승인 정약용에게 보낸 차는 단순한 잎차가 아니라, 다산이 직접 지시하고 표준화한 고유의 떡차(차병, 茶餠)였다[14][15]. 조선 시대 왕실과 일부 사대부 가문에서는 기제사나 명절에 차례를 올리는 전통이 유지되기도 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전반적인 음다 풍속은 쇠퇴기에 있었다[16][17]. 이시헌은 다산의 가르침을 받아 쇠퇴해 가던 전통 제다 기술을 현장에서 실용화하고 보존하였다[4][18].
1830년, 남양주에 머물던 69세의 정약용은 체증으로 고통받으며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제다법을 신신당부하였다[4][14].
"올 들어 병으로 체증이 더욱 심해져서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떡차에 힘입어서일세.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 주기 바라네. 다만 지난번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 썩 좋지가 않더군.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아주 곱게 빻아야 할 걸세. 또 반드시 돌샘물로 고루 반죽해서 진흙처럼 짓이겨 작은 떡으로 만든 뒤라야 찰져서 먹을 수가 있다네."[19]
이 편지에 기록된 **'삼증삼쇄(三蒸三曬)'**는 한약재의 강한 약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원리를 차 제다에 맞춤형으로 간략화한 제법이다[14][20]. 채소 위주의 식습관을 가진 한국인의 체질에 독한 잎차가 유발할 수 있는 위장 장애를 줄이고, 차의 유효 성분이 천천히 우러나오도록 돕는 과학적 배려가 담겨 있다[14].

이시헌은 스승이 당부한 삼증삼쇄의 법제를 정확히 준수하여 차를 만들었고, 이 제다법은 집안의 비법으로 전수되어 유실 없이 보존될 수 있었다[4][18].
다서(茶書) 발굴과 학술적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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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은 구전이나 가내 노동에만 의존하던 제다 기술에 학술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서적의 정리와 필사에도 힘썼다[21]. 2006년, 강진 백운동 원림의 종가 고문서 속에서 이시헌의 친필 필사본인 잡록집 『강심(江心)』이 발굴되었다[22][23]. 이 『강심』 내부에는 유배객 이덕리(李德履)가 지은 차 학술서인 『기다(記茶)』(일명 다설)의 필사본 원문이 그대로 온존해 있었다[23][24].
이덕리의 『기다』는 조선 후기 차의 산지와 명칭 분류, 나아가 국가가 차 무역을 전매하여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독창적이고 근대적인 차 무역론을 담은 한국 차 문화사의 기념비적 저술이다[24]. 그동안 학계에서는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訟)』에 인용된 '동다기'의 저자를 정약용으로 오인해 왔으나, 이시헌이 남긴 필사본 『강심』의 발견을 통해 실제 저자가 이덕리였음이 명백하게 규명되었다[23][24]. 이시헌의 철저한 기록 및 필사 정신은 조선 후기 차 문화 이론의 실체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다[24].
한국 최초 브랜드 차 '백운옥판차'로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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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에 의해 가문 대대로 보존된 다산의 삼증삼쇄 제다법과 차 생산 전통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 최초의 근대적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白雲玉版茶)'**의 탄생으로 결실을 맺었다[4][10].
이시헌은 자신이 평생 익히고 보존한 제다법을 집안의 제자인 이흠(이산흠)에게 전수하였고, 이흠은 이를 다시 이한영(李漢永, 1868~1956)에게 물려주었다[4].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상인들이 전남 지역의 야생 찻잎을 거두어 일본 상표를 붙여 불법적으로 유통·수출하자, 이한영은 우리 차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통 제다법을 기반으로 자체 상표를 고안하였다[10][25]. 그는 백운동 별서정원의 제1경이자 월출산의 봉우리 이름인 '옥판봉'에서 이름을 따 '백운옥판차'라 이름하고 세상에 출시하였다[10][25].
백운옥판차는 찻잎의 크기와 수확 시기에 따라 체계적인 품질 기준을 마련하여 유통하였다[10].
| 등급 | 한자 표기 | 설명 및 규격 | 제다 및 공급 특징 |
|---|---|---|---|
| 맥차(麥茶) | 麥茶 | 싹이 갓 돋아난 아주 어린 새순[10] | 극소량만 생산되어 주로 다산가로 보내지던 최고급 품목[10] |
| 작설(雀舌) | 雀舌 | 참새의 혀처럼 새순 끝이 둘로 갈라진 잎[10] | 맥차 수확 직후에 채취하며 은은한 맛과 향이 특징[10] |
| 모차(矛茶) | 矛茶 | 새순의 갈래가 셋 이상으로 뾰족하게 자란 잎[10] | 창끝과 같은 형상을 띠며 강한 바디감을 지님[10] |
| 기차(旗茶) | 旗茶 | 넓고 크게 다 자란 잎[10] | 대중적인 소모용으로 적합하며 떫은맛을 줄여 제다함[10] |
이와 같은 체계적인 원료 분류와 삼증삼쇄에 기반한 섬세한 가공법은 이시헌이 다산 정약용에게 전수받은 가르침을 온전히 보존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4].
평가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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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헌은 조선 후기 쇠퇴해가던 차 문화를 부흥시키고, 이를 근대 산업적 영역으로 전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다[16][21]. 사찰과 승려 중심의 차 문화 전승에서 벗어나 선비 계층의 실용 학문과 가문의 신의라는 유교적 덕목을 바탕으로 차의 생명력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12].
스승과의 약속을 평생의 의리로 지켜낸 다신계의 실천, 삼증삼쇄 제다법의 원형 보존, 그리고 한국 차 문화의 정수인 『기다』의 필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전통 다도의 정체성을 세우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10][21][24].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김영사, 2011년
- 정약용,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 1818년
- 이덕리, 《기다(記茶)》(필사본 《강심(江心)》 수록)
- 문화재청, 〈강진 백운동 원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지정 보고서〉,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