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압차
긴압차(緊壓茶)는 찻잎에 증기를 가해 부드럽게 만든 뒤, 일정한 형틀에 넣고 강한 압력을 가하여 다양한 형태로 압착 성형하여 건조한 고형차(固形茶)이다[1]. 잎차 그대로 유통되는 산차(散茶)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수송의 편리성과 장기 보관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며, 주로 흑차나 보이차 등의 후발효차류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가공 및 유통 형태이다[1].
어원과 역사적 유래
편집
긴압차의 '긴압(緊壓)'은 '단단하게 누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1][2]. 긴압차는 중국 차 역사에서 매우 오랜 기원을 가진다. 기원전 삼국 시대(AD 220~265년)에 이미 떡 형태의 고형차인 병차(餠茶)를 제조했다는 기록이 존재하며, 당(唐)나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차음다법(煮茶飮茶法)이 유행함에 따라 찻잎을 쪄서 덩어리로 만든 단차(團茶)가 널리 소비되었다. 당대 다성(茶聖) 육우가 저술한 《다경(茶經)》(780년)에 묘사된 단차 제법은 현대 긴압차의 직계 조상이라 할 수 있다[3][4].
이후 송(宋)대까지 용봉단차(龍鳳團茶)와 같이 황실에 진상되던 최고급 고형차가 성행하였으나[5],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이 사치스러운 단차 생산을 금지하고 잎차 형태인 산차를 장려하면서 중국 본토에서는 긴압차의 세력이 한풀 꺾이게 되었다[5]. 그러나 티베트, 네팔, 몽골 등 중국 변방의 고산지대 유목민들과의 무역에서는 긴압차 형태가 필수로 요구되었다[1]. 험준한 산악 도로와 협곡으로 이루어진 차마고도를 통해 차를 운반하던 상인 집단인 마방들은 부피가 크고 부서지기 쉬운 잎차 대신, 좁은 말 안장이나 야크 등에 싣기 편하고 습기에 강한 고밀도의 긴압차를 선호하였다[1][6]. 이처럼 긴압차는 변방 소수민족의 생필품 무역과 차마(茶馬) 교역의 발전 속에서 독자적인 제다 문화를 구축해 왔다[1][6].
제조 공정과 기술
편집
긴압차를 만드는 공정은 원료가 되는 쇄청모차(晒靑毛茶)나 흑차 모차의 준비에서 시작된다[1][2]. 대엽종 찻잎으로 만드는 모차는 잎이 크고 부피가 매우 두터워 그대로 보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긴압 공정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1]. 긴압 공정은 크게 증압(蒸壓), 성형(成型), 건조(乾燥)의 단계로 구분된다[1].

- 증압(蒸壓): 건조된 모차를 형틀에 넣고 100℃ 내외의 고온 증기를 짧게(대략 30초 내외) 쐬어 준다. 증기는 뻣뻣하던 찻잎을 부드럽게 만들며, 찻잎 표면에 함유된 펙틴 등의 점착성 화학 성분을 활성화하여 찻잎들이 서로 잘 엉겨 붙을 수 있는 상태를 유도한다. 이 단계에서 찻잎에 남아 있던 거친 잡취가 휘발되어 날아가기도 한다.
- 성형(成型): 수증기로 부드러워진 찻잎을 일정한 무게(예: 357g 등)로 계량하여 무명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넣고 형태를 잡는다[4].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석모(石模)'라고 불리는 25~40kg 무게의 움푹한 돌틀을 주머니 위에 얹은 다음, 작업자가 직접 그 위에 올라가 체중을 실어 가장자리까지 균일하게 밟아 압착한다. 현대 상업 생산에서는 정밀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유압 기계를 사용하여 강하고 빠르게 균일한 형태를 성형해 낸다[4][7].
- 건조(乾燥): 압착된 상태에서 찻잎 사이의 물리적 결합이 완전히 고정되도록 일정 시간 건조대에 올려 둔다. 이후 천 주머니를 벗겨내고 본격적인 건조 과정에 들어간다. 건조는 자연 건조법과 건조실을 이용하는 인공 건조법이 있다. 이때 건조실 내부 온도가 과도하게 높으면 찻잎 속의 자연 산화효소 및 유익한 미생물이 파괴되어 후발효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므로, 통상 효소의 변성 온도 이하인 60℃~65℃ 이하로 통제하여 최종 수분 함량을 13% 이하로 맞춘다.
형태에 따른 종류와 특성
편집
긴압차는 압축된 모양과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8]. 형태에 따른 주요 종류는 다음과 같다.
| 종류 | 형태적 특징 | 표준 규격 및 중량 | 역사 및 용도 |
|---|---|---|---|
| 병차 (餠茶)[8][9] | 둥글고 납작한 원반 모양. 뒷면 중앙에 움푹한 홈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4]. | 357g (표준), 100g, 400g 등[10][11] | 칠자병차(七子餠茶)로 대표되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며, 장기 보관과 숙성에 적합하다[4][11]. |
| 전차 (磚茶)[10][12] | 벽돌 모양의 단단한 직사각형 고형차이다[4][10]. | 250g, 500g, 1kg 등[4][10] | 변방 수송 및 보관 효율을 극대화한 형태로, 과거에는 화폐 대용으로도 유통되었다[4]. |
| 방차 (方茶)[8][10] | 얇고 평평한 정사각형 판형 모양이다[10]. | 100g, 250g[10] | 주로 선물용이나 소장용, 기념차로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제작된다[8][10]. |
| 타차 (沱茶)[8][10] | 가운데가 움푹 패인 사발 혹은 버섯 형태를 취한다[4][10]. | 100g, 250g 등[10] | 사천 및 윈난성 하관 지방에서 유래되었으며 휴대성과 건조 효율이 뛰어나다[8]. |
| 금과공차 (金瓜貢茶)[8][10] | 둥근 참외나 호박, 혹은 인간의 머리 모양과 유사한 대형 구형차이다[4][10]. | 수백 g에서 수 kg 이상[4][10] | 청나라 황실에 진상하던 고가의 최고급 공차(貢茶)이다[4]. |
| 긴차 (緊茶)[8][10] | 하트 모양 혹은 자루가 달린 버섯 모양이다[4][10]. | 250g[10] | 주로 티베트 교역용으로 수출되었으며 습기 방지와 통풍에 유리한 구조를 지닌다[8]. |
| 소타차 (小沱茶)[8][10] | 미니 팽이 크기로 아주 작게 빚은 소형 타차이다[10][13]. | 5g ~ 8g 내외[13] | 현대 다인들이 차를 쪼개는 번거로움 없이 1회에 바로 우려 마실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8][13]. |
화학적 변화와 후발효 메커니즘
편집
긴압은 단순히 부피를 줄이는 물리적 변화를 넘어, 찻잎 내부에서 진행되는 미생물 발효와 화학적 성질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다[14]. 흩어져 있는 산차는 공기 중 산소와 닿는 면적이 넓어 급격히 산화되거나 고유의 향 성분이 빠르게 휘발되는 성질이 있다. 반면, 고압으로 조밀하게 성형된 긴압차는 내부 산소 공급이 서서히 이루어져 급격한 산화가 제어된다[14].
대신, 찻잎 사이에 잔존하는 수분과 통제된 산소 환경 속에서 후발효 미생물이 서서히 번식하게 된다[14]. 흑차나 보이차 등의 긴압차는 아스페르길루스 니게르(Aspergillus niger)와 같은 사상균이나 효모균의 대사 작용을 통해 후발효 과정을 겪는다[14]. 특히 중국 안화현에서 생산되는 흑차인 복전차(茯砖茶)의 경우, 제조 과정 중 관돌산낭균(Eurotium cristatum)이라는 유익균이 발생하여 황금색 알갱이 모양의 '금화(金花)'를 형성하는 독특한 이화학적 특성을 보인다[15][16].
이러한 유익 미생물의 작용과 느리게 지속되는 자연 산화 반응을 통해, 찻잎 속의 카테킨 등 폴리페놀 성분들이 중합하여 테아루비긴(Thearubigins)이나 테아플라빈(Theaflavins)과 같은 고분자 물질로 전환된다. 이 과정에서 찻잎 특유의 떫고 거친 맛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달콤한 풍미가 늘어나며, 수색 또한 투명한 황색에서 갈색, 나아가 짙은 검붉은색으로 점차 깊어지게 된다.
음용 문화와 현대적 의의
편집
긴압차는 압축 성형의 특성상 매우 견고하고 딱딱하여 손으로 부수기 어렵다. 따라서 이를 우려내기 위해서는 다침(茶針)이나 다도(茶刀)라는 뾰족한 전용 도구를 사용하여 찻잎의 압착 결을 따라 조심스럽게 결대로 떼어내는 '해괴(解塊)'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사적으로 변방 소수민족들은 조각낸 긴압차를 끓는 물에 직접 넣고 오랜 시간 끓여 우려내는 자차법(煮茶法)을 기본 음용 방식으로 삼았다[17]. 이들은 끓여낸 찻물에 소금, 야크 버터, 유제품 등을 첨가하여 수유차나 함내차를 만들어 마셨다[12][17]. 고원 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육류와 동물성 지방 위주의 식사를 하던 이들에게, 긴압차는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보충하고 위장 운동을 도와 소화를 촉진하는 필수 생필품이었다.
반면 현대에는 떼어낸 찻잎을 자사호(紫砂壺)나 개완(蓋碗)에 담아 95℃ 이상의 뜨거운 물에 여러 번 짧게 우려 마시는 공부다법이 정착되었다[17]. 찻잎에 묻은 미세한 먼지와 불순물을 제거하고 압착된 잎을 풀어주기 위해 첫 번째 우린 물은 버리는 세차(洗茶)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의학 및 전통 다학계에서 흑차나 보이차 계열의 긴압차는 따뜻한 성질을 지녀 위장을 보호하고 소화를 도우며, 가래를 삭이고 거풍(몸 안의 나쁜 기운을 물리침)에 효능이 있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16][18]. 현대 이화학적 연구 역시 긴압차 속의 풍부한 폴리페놀과 미생물 대사산물이 체지방 분해 및 혈중 지질 개선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15][16].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육우, 《다경(茶經)》, 780년경
- 정동효 외, 《차생활문화대전》, 홍익재, 2012
- 중국농업과학원 차엽연구소, 《중국차경(中國茶經)》, 상해문화출판사, 19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