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풍향차보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는 조선 후기인 1755년(영조 31) 전라도 부안 현감으로 부임한 이운해(李運海, 1710?)가 고창 선운사 일대의 찻잎과 향약재를 활용하여 만든 일곱 가지 약용 가향차의 제법, 효능, 다구 등을 수록한 문헌이다[1][2]. 비록 원본은 소실되어 전하지 않으나, 실학자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일기인 《이재난고(頤齋亂藁)》에 수록되어 전수되었으며, 조선시대 독창적인 블렌딩 차 문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다[3][4].
어원과 집필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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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扶風)'은 조선시대 전라도 부안(扶安) 현의 옛 별호이다[4]. '향차(鄕茶)'는 지방의 향토색을 띤 차라는 뜻의 '향차(鄕茶)'와, 향기로운 약재를 더했다는 뜻의 '가향차(香茶)'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4].
이운해는 부안 현감으로 부임한 이듬해인 1755년, 인근 무장현(현재의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사(禪雲寺)에 명차가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고을 백성들과 관민들이 이를 알지 못해 잡목이나 땔감으로 여겨 베어 쓰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1][2]. 이에 관아의 아전을 보내어 찻잎을 채취하게 하였고, 마침 부안을 방문한 종숙과 함께 찻잎에 조선의 풍토에 맞는 향약(鄕藥)을 가미하여 질병 예방과 치료에 쓰일 수 있는 일곱 가지 향차를 개발하였다[2][5]. 이운해는 이를 계기로 고을 백성들의 건강을 돌보고 차 문화의 유익함을 일깨우고자 《부풍향차보》를 묶어 기록으로 남겼다[5][6].
역사적 가치와 발굴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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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는 한국 차문화사에서 독보적인 역사적 위상을 지닌다[7]. 오랫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다서로는 이덕리(李德履, 1728?)의 《동다기(東茶記)》(1785년 저술)나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1837년 저술)이 꼽혀왔다[2]. 그러나 2008년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와 월간 《차의 세계》가 호남의 대표적 실학자인 황윤석의 친필 일기 《이재난고》 제1책에서 전사(傳寫)된 형태로 실려 있는 《부풍향차보》를 발굴함으로써, 한국의 전문 다서 역사가 기존 학계의 정설보다 약 30년에서 80년가량 앞당겨지게 되었다[2].
이운해가 저술한 원본 도서는 전하지 않지만, 황윤석이 1757년(영조 33) 6월 22일 일기에 《부풍향차보》의 핵심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다구의 실측도까지 모사해 둠으로써 당대 조선 후기 음다 풍속과 행다(/wiki/행다) 방식의 실증적 사료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7][8].
서적의 구조와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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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는 황윤석의 일기에 채록된 초록본 형태로 전해져 분량은 두 쪽에 불과하지만, 서문(序文)을 비롯하여 다본(茶本), 다명(茶名), 제법(製法), 다구(茶具)의 네 개 항목으로 매우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8].
- 서문: 선운사 일대 차의 존재와 백성들이 차를 잡목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향차를 제다하게 된 경위와 지명을 딴 서적 명명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5].
- 다본(茶本): 차의 식생과 명칭, 채취 시기에 따른 차의 분류 및 기본적인 약성을 기록하였다[7].
- 다명(茶名): 일곱 가지 주요 증상에 대처하는 맞춤형 가향약차의 명칭과 각 약재의 처방을 수록하였다[7].
- 제법(製法): 차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작설차와 약재의 비율, 달여서 향과 약효를 찻잎에 배게 하는 공정, 건조 보관 방법 및 차를 우려 마시는 음다법을 기술하였다[2][7].
- 다구(茶具): 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 필요한 화덕과 찻그릇 여섯 종의 명칭, 용량, 형태를 그림과 함께 실었다[2].
일곱 가지 약용 향차 (칠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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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해는 조선 최고의 의서인 《동의보감》을 참고하여, 일상생활에서 발병하기 쉬운 일곱 가지 병증(풍, 한, 서, 열, 감, 기침, 체증)에 효능이 있는 고유의 향약재를 엄선해 차에 배합하였다[9]. 이를 '칠향차(七香茶)'라고 하며, 주재료인 작설차에 부재료인 향약재의 정유(/wiki/정유) 성분을 흡착시켜 가공한 일종의 기능성 블렌딩 차이다[5][9][10].
| 구분 | 대상 증상 | 가미 약재 | 차의 효능 및 특징[9][11] |
|---|---|---|---|
| 풍(風) | 중풍, 어지럼증 | 감국(甘菊), 창이자(蒼耳子) | 두통과 현기증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맑게 함 |
| 한(寒) | 오한, 한기(寒氣) | 계피(桂皮), 회향(茴香) |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도움 |
| 서(暑) | 더위 먹음, 일사병 | 백단향(白檀香), 오매(烏梅) | 갈증을 해소하고 체내의 열을 내림 |
| 열(熱) | 발열, 화증(火症) | 황련(黃連), 용뇌(龍腦) | 비정상적인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킴 |
| 감(感) | 감기, 오한 발열 | 향유(香薷), 곽향(藿香) | 땀을 내어 해열을 돕고 두통을 완화함 |
| 수(嗽) | 기침, 천식 | 상백피(桑白皮), 귤피(橘皮) | 기관지를 부드럽게 하고 기침과 가래를 삭임 |
| 체(滯) | 식체, 소화불량 | 자단향(紫檀香), 산사육(山査肉) | 위장 운동을 촉진하여 체기를 풀어줌 |
제법과 음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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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의 가향 제법은 현대의 블렌딩 차나 얼 그레이 같은 유럽식 가향차 제법과 일맥상통하면서도, 한의학적 달임 공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고유한 독창성을 지닌다[1]. 영국의 정치가 찰스 그레이(/wiki/찰스-그레이) 수상의 이름에서 유래한 얼 그레이 차가 홍차 잎에 베르가모트(/wiki/베르가모트) 향을 입혀 정유(/wiki/정유)의 풍미를 즐긴다면, 부풍향차는 한약재를 달여 찻잎에 흡착시키는 가향 공정을 취한다.
제다 과정

- 재료 준비: 잘 만든 작설차 6냥(약 225g)을 주재료로 삼고, 증상에 따라 선별한 약재들을 각각 1돈(약 3.75g)씩 준비한다[7].
- 달임과 흡착: 약재에 물 2잔을 붓고 가열하여 물의 양이 반쯤 줄어들 때까지 서서히 달인다[7]. 우러난 진한 약액에 준비한 작설차 찻잎을 고루 섞어 혼합한다[7]. 이 과정에서 뜨거운 약액이 찻잎의 세포벽을 통과하면서 약재의 유효 성분과 정유(/wiki/정유) 향이 찻잎 속으로 깊숙이 흡착된다.
- 건조 및 보관: 약액이 고루 흡착된 찻잎을 골고루 분산시킨 뒤, 따뜻한 불에 쬐어 수분을 완전히 말린다[11]. 이후 삼베나 무명 등의 포장(/wiki/포장) 주머니에 담아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7][11].
음다법
차를 마실 때는 먼저 다관(茶罐)에 깨끗한 물 두 종지 분량을 붓고 화덕에서 끓인다[7]. 물이 끓으면 가향 처리된 찻잎을 넣고 가볍게 우려낸다. 차는 반드시 뜨겁게 마셔야 약효가 제대로 나며, 차게 마시면 가래가 끓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차를 장기간 복용하면 체내의 불필요한 지방질과 기름기가 제거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다구(茶具)의 특징과 계량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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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의 또 다른 가치는 당대의 다구를 단순히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크기와 용량을 실측하여 그림과 함께 제시하였다는 점에 있다[2]. 이는 당시 조선 후기의 도량형 기준과 음다 풍속을 복원하는 결정적 열쇠가 된다[8]. 이 책에 수록된 대표적인 다구 여섯 종은 다음과 같다[2][12].
- 다로(茶爐): 차를 끓이는 전용 화덕으로, 나무를 넣어 불을 땔 수 있도록 공기 순환용 배기구와 화구를 갖춘 구조이다[12].
- 다관(茶罐): 물을 끓이는 주전자로, 찻종 두 개 분량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다[12].
- 다부(茶缶): 찻잎을 넣어 보관하거나 끓인 물을 임시로 담아두는 항아리이다[12].
- 다종(茶鍾): 찻잔 두 개 분량을 담을 수 있는 중간 크기의 잔이다[12].
- 다잔(茶盞): 차를 직접 입에 대고 마시는 잔으로, 한 홉(合, 약 180ml) 용량으로 규정되어 있다[12].
- 다반(茶盤): 다관, 다종, 다잔 등을 위에 올려 정돈해 두는 차받침 쟁반이다[12].
이운해는 다구 간의 비례를 "다잔은 1합들이이고, 다종은 다잔 2개들이며, 다관은 다종 2개들이"라는 방식으로 상대적 비례와 함께 절대 용량을 명확하게 규정하였다[12]. 이러한 수학적 계량 방식은 당시 전해지던 《아암집(/wiki/아암집)》 등 동시대 다른 지식인들의 차 관련 문헌이나 행다(/wiki/행다) 기록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도의 실학적 실증주의가 반영된 결과이다.
현대적 평가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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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향차보》는 단순히 차의 역사를 앞당긴 고문헌이라는 점을 넘어, 18세기 조선 실학자들의 실용 정신과 위민(爲民) 정신이 집약된 실천적 저술이다[6]. 지배층만의 기호품으로 여겨지던 차를 민간의 상비약이자 일상 음료로 보급하고자 한 애민 사상이 돋보인다[6].
또한, 서양에서 다양한 허브와 향료를 섞는 현대적 블렌딩 기법이 정착하기 훨씬 이전부터, 조선의 고유한 향약재를 기반으로 기능성 가향차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1]. 현대 한국 차 학계와 전라북도 부안군 및 고창군 등 지자체에서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 칠향차를 복원하고 있으며, 부안 청자박물관에서는 책에 그려진 다구를 고증하여 부안의 옛 고려청자 가마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차도구 복원 전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13][14]. 이는 오늘날 대중화된 블렌딩 차 시장에서 한국 전통의 독창적 가향차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학술적·문화적 토대가 되고 있다[1].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정민, 〈18세기 중엽 부안의 차문화와 『부풍향차보』〉, 《한국실학연구》 제16호, 한국실학학회, 2008.
- 황윤석, 《이재난고(頤齋亂藁)》, 1757년.
- 정민,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김영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