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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액편

탕액편(湯液篇)은 조선 광해군 2년(1610년) 허준(許浚)이 편찬하여 1613년에 간행한 종합 의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네 번째 편으로, 동양의 약물학 및 본초학(本草學)적 지식을 집대성한 한의학 문헌이다[1][2][3]. 총 3권(동의보감 제22~24권)으로 구성된 탕액편은 한반도와 주변국에서 채취되는 649종의 약재를 분류하여 그 약성, 약미, 독성의 유무, 수치법(가공법) 및 채취 시기 등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 중 '목부(木部)'에 수록된 '고다(苦茶, 작설차)' 항목을 통해 차(茶)의 성질과 구체적인 약리 효능 및 음용 시의 주의사항을 기미론(氣味論)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다[1][4].

체제와 차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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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액편은 자연계의 물질을 기원에 따라 분류한 동양의 전통적 본초학 체계를 수용하면서도, 조선의 현실에 적합하도록 실용적으로 재구성하였다[2].

탕액편의 분류 구조

탕액편은 약물의 기원과 성상에 따라 총 15개의 부(部)로 나누어 서술한다[5].

  • 권1: 탕액서례(湯液序例), 수부(水部), 토부(土部), 곡부(穀部), 인부(人부), 금부(禽部), 수부(獸部)[6]
  • 권2: 어부(魚部), 충부(蟲部), 과부(果部), 채부(菜部), 초부 상(草部 上)[6]
  • 권3: 초부 하(草部 下), 목부(木部), 옥부(玉部), 석부(石部), 금부(金部)[6]

차(茶)의 분류적 위치

차는 탕액편 권3의 '목부(木部)'에 '고다(苦茶)'라는 약재명으로 등재되어 있다[7]. 이는 차나무를 상록 활엽 관목으로 파악한 본초학적 인식에 따른 결과이다. 허준은 한문 약명인 '고다(苦茶)' 아래에 당시 조선의 속명(鄕藥名)인 '쟉셜차'를 한글로 명기함으로써, 고유의 국산 차와 중국의 차를 일치시키고 민간에서의 활용도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4][8].

기미론적 특성과 승강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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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액편은 동양의 전통 자연철학에 근거한 기미론을 바탕으로 차의 기운(氣)과 맛(味), 그리고 그것이 인체 내에서 움직이는 방향성인 승강(升降)을 규명하고 있다.

탕액서례에서의 기미와 승강 학설

탕액편의 도입부인 '탕액서례(湯液序例)'에서는 약재가 가진 물리적 성상과 맛의 강약이 인체 내부에서 기를 올리거나(升) 내리는(降) 작용을 유발한다고 설명하며, 작설차를 대표적인 예시로 꼽았다.

  • 양(陽)과 승(升)의 관계: 형태가 가볍고 맑으며 맛이 약한(엷은) 약재는 하늘의 기운을 본받았기 때문에 기를 위로 올리는 성질을 가진다. 탕액서례 원문에서는 "생김새가 가볍고 맑으며 맛이 약한 것은 작설차 같은 것인데, 이것은 하늘의 기운을 본받았기 때문에 위로 잘 간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차가 머리와 눈의 열을 식히고 정신을 각성시키는 근본적인 기전이 된다[4].

고다(苦茶)의 약성 정의

목부의 고다 조문에서는 차의 구체적인 약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7].

  • 성질(氣): 성질은 조금 차다(微寒). 일설에는 냉(冷)하다고도 한다[4][7].
  • 맛(味): 맛은 달고 쓰며(甘苦), 독이 없다(無毒)[4][7].
  • 귀경(歸經): 음용 시 인체의 심포경(心包經)과 간경(肝經)으로 들어간다[4].

약리적 효능과 해독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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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액편에 기록된 차의 효능은 신체의 상부를 맑게 하고 하부의 노폐물 배출을 촉진하는 정화 작용에 집중되어 있다[4].

구체적 효능

  • 하기 및 소식(下氣消宿食): 비정상적으로 솟구치는 기운을 아래로 내리며, 오래되어 정체된 식체(食滯)를 삭히고 소화를 돕는다[4][7].
  • 청두목(淸頭目): 머리와 눈을 맑게 하여 정신적 피로를 씻어내고 총명함을 유지하게 돕는다[4][7].
  • 이소변(利小便): 이뇨 작용을 촉진하여 체내 노폐물과 수분의 배출을 원활하게 한다[4][7].
  • 지소갈(止消渴): 갈증을 멈추게 하며, 소갈(당뇨병의 전형적 증상)로 인한 갈증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4][7].
  • 영인소수(令人少睡): 사람으로 하여금 잠을 덜 자게 함으로써 각성 상태를 돕고 수면을 억제한다[4][7].

해독 효과와 거위고기 일화

탕액편에는 차가 지닌 강력한 해독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구체적인 임상적 일화를 싣고 있다[4][8]. 평소 구운 거위고기(炙鵝)를 매우 즐겨 먹던 이가 있었는데, 당시의 의사들은 그 기름진 음식을 계속 먹으면 필시 몸속에 옹병(癰病, 장기 내부에 생기는 종양이나 염증)이 생겨 사망할 것이라 경고하였다[4][8]. 그러나 그는 아무런 병도 얻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았다[4][8]. 그 원인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그는 매일 밤 기름진 고기를 먹은 후 반드시 시원한 차 한 사발을 마셔왔음이 밝혀졌다[4][8]. 탕액편은 이 사례를 통해 차가 구운 음식과 고지방 육류 섭취로 발생하는 열독을 해독하는 작용을 증명하였다[4][7][8].

현대 생약학 및 기능성 식료학 연구에 따르면, 탕액편에서 소식(消食)과 해독 작용으로 언급한 차의 효능은 찻잎에 다량 함유된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GCG) 등의 카테킨 성분 및 테아플라빈플라보노이드 화합물이 지닌 항산화, 콜레스테롤 저하 및 지방 축적 억제 활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채취 시기와 제다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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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액편은 찻잎을 수확하는 시기와 가공 상태에 따라 차의 명칭을 고전 문헌을 인용하여 정밀하게 구분하였다[9].

탕액편 도식

채엽 시기에 따른 구분

찻잎은 채취 시기의 이르고 늦음에 따라 다섯 가지의 명칭(다, 가, 설, 명, 천)으로 불린다[7][9].

  1. 다(茶): 상록인 차나무에서 겨울을 보낸 잎 중 봄철 일찍 채취한 것[7][9].
  2. 가(槟): 차나무의 고대 이명 중 하나[7][9].
  3. 설(蔎): 찻잎이 한창 돋아나는 시기에 따낸 것[7][9].
  4. 명(茗): 봄이 가고 늦은 시기에 채취한 찻잎[7][9].
  5. 천(荈): 채취 시기가 늦어 거칠고 늙은 잎[7][9].

작설과 납다 제법

동의보감은 "옛사람들이 찻잎의 어린 싹을 일컬어 작설(雀舌, 참새의 혀) 혹은 맥과(麥顆, 보리알)라 하였는데, 이는 지극히 연하고 부드러운 상태의 싹을 지칭한다"고 기록하였다[7][9]. 이 어린 싹을 따서 찧은 다음 떡 모양으로 조형하여 건조한 것을 '납다(臘茶)' 또는 병차(餠茶, 떡차)라 부른다[7][9].

이는 솥에서 찻잎을 직접 볶아 완성하는 현대의 덖음차 제법이나 일반적인 잎차 가공 방식과는 차이가 있는 전통적인 제다 방식이다. 탕액편은 이러한 떡차를 가공할 때 불에 적당히 쬐어 수분을 날려 보내는 과정(並得火良, 탄배와 유사한 가공법)을 거쳐야만 차가 지닌 본연의 약성이 우수하게 보존된다고 보았다[7][9].

음용 방법과 체질별 주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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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신체를 이롭게 하는 훌륭한 본초이나,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음용하는 온도와 복용자의 신체 상태에 따라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탕액편에서는 엄격한 섭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4].

음용 온도와 담(痰)의 유발

  • 온음(溫飮)의 원칙: 차는 달이거나 우릴 때 반드시 뜨겁게 끓여서 마셔야 유익하다[4][7]. 물을 끓여 붓는 주수와 우려진 찻물을 따르는 출탕의 과정에서 차의 온도가 유지되어야 체내 기혈 순환에 기여할 수 있다.
  • 냉음(冷飮)의 폐해: 차를 차갑게 식혀서 마시면, 차가운 성질이 몸 안의 습기와 결합하여 담(痰)이 가슴과 목구멍에 뭉치게 되고 해수나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4][7][9].

장기 복용과 비만 억제 효과

  • 지방 제거 효능: 탕액편은 "차를 오래 복용하면 사람의 몸에서 기름기를 제거하여 마르게 한다(久服去人脂, 令人瘦)"고 밝히고 있다[4][7]. 이는 신체 내에 습담(濕痰)이 많고 비만하여 노폐물이 축적된 체질에게는 훌륭한 대사 개선 및 체중 조절의 약리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10].
  • 체질적 주의사항: 반면, 원래 신체가 수척하고 체내 진액과 음혈(陰血)이 부족하여 건조한 소음인 등의 체질인 경우, 차를 장기간 과다 음용하면 이뇨 작용으로 인한 수분 손실이 가속화되고 소화기가 지나치게 냉해져 소화불량이나 기립성 저혈압 등의 부작용을 겪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10].

역사적·문화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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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탕액편에 기록된 차 관련 내용은 조선 시대 생활사와 한국 차문화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문헌적 기준을 제공한다[4][8].

차문화 전승의 연속성 확인

조선 시대는 유교적 가치관의 지배와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찰 중심의 차문화가 쇠퇴하면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음다(飮茶) 풍속이 완전히 소멸하였다는 시각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17세기 초 편찬된 의서인 탕액편에 '쟉셜차'라는 한글 고어 표기가 명확히 수재되어 있고, 차의 제다법, 채엽 시기, 상세한 음용 방법이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조선 중기까지도 차에 대한 지식과 전통적인 차 제조 및 소비문화가 민간과 의료 영역, 왕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었음을 고증하는 유력한 지표가 된다[4][8].

후대 다론 형성에 미친 영향

탕액편에서 확립된 차의 기미론적 해석과 약성 설명은 19세기 조선 후기 차문화의 중흥기를 이끈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대흥사 일지암에서 저술한 『동의다송(東茶頌)』 및 다산 정약용의 차 관련 저작들에 직접적인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조선의 문인들은 차를 마시는 다례다구를 다루는 문화를 정신 수양의 도구로 삼았으며, 이는 탕액편이 제시한 '상부의 기를 맑게 하고 신체를 정화하는 해독제'로서의 의학적 신뢰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4].

같이 보기

각주

[1] mjmedi.com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4] mjmedi.com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5] oak.go.kr – vertexaisearch.cloud.google.com
[9] teaculture.co.kr – teaculture.co.kr
[10] gimhaenews.co.kr – gimhaenews.co.kr

참고 문헌

  •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1613년.
  •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1837년.
  •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고전명저총서 동의보감 국역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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