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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요

월주요(越州窯)는 중국 저장성(浙江省) 북동부 일대에서 한대(漢代)부터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 고품질 청자를 생산하던 대표적인 요장(窯場)이자, 당대(唐代) 음다(飮茶) 문화의 융성과 함께 최고의 찻그릇을 빚어낸 도자 생산지이다. 특히 당나라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에서 으뜸가는 차완(茶碗)으로 공인받으며 동아시아 다도 문화와 청자 공예의 기술적·미학적 원형을 확립하였다.

지리적 환경과 요장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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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요라는 명칭은 당대 행정구역이었던 월주(越州)의 관할 구역 안에서 가마가 분포한 데서 비롯되었다. 중심 생산지는 오늘날 저장성 츠시시(慈溪市) 상림호(上林湖) 일대이며, 사오싱(紹興), 닝보(寧波), 위야오(余姚) 등 영소(寧紹) 평야와 호수 주변에 수많은 요지가 밀집하였다.

상림호 일대는 도자기 생산에 필수적인 백토(白土)와 자석(瓷石) 매장량이 풍부하였고, 구릉 지대의 울창한 삼림은 도자 소성에 필요한 땔나무를 지속적으로 공급하였다. 또한 조아강(曹娥江)과 절동운하(浙東運河)를 거쳐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으로 통하는 내륙 수운망이 발달하였으며, 동쪽의 무역항인 명주(明州, 현 닝보)를 통해 해상으로 자기를 수출하기에 매우 유리한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월주요는 후한(後漢) 시기부터 초기 형태의 회유도기에서 진전된 원시 청자를 굽기 시작하였으며, 2세기 무렵에는 1,200℃ 이상의 고온에서 치밀하게 소결된 진정한 의미의 자기를 완성하였다.

시대별 역사와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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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요는 중국 도자사에서 청자의 태동부터 절정기까지 전 과정을 대변하는 유서 깊은 가마이다.

삼국시대 오(吳)나라와 서진·동진 및 남북조 시대(육조 시대)를 거치며 월주요는 조형과 유약 기술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불교의 보급에 따라 연화문(蓮花紋)이 장식된 기물과 천계호(天鷄壺, 닭머리 모양 주전자) 등이 생산되었으며, 귀족층의 부장품과 일상 용기로 널리 보급되었다.

당대에 이르러 차 문화가 국가적 유행으로 자리 잡으면서 월주요는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상림호 주변에만 수십 기의 용요(龍窯)가 군집하여 가동되었으며, 굽 바닥이 평평하고 넓은 옥벽저완(玉璧底碗)을 대량 생산하여 전국적인 차완 수요를 충족시켰다.

오대십국(五代十國) 시기 오월국(吳越國)의 전씨(錢氏) 왕실은 월주요를 전속 관요(官窯) 체제로 개편하여 엄격히 관리하였다. 이 시기에는 일반인의 사용이 금지되고 오직 황실 공납과 불교 사원 공양만을 위해 제작된 최고급 청자인 비색청자(秘色靑磁)가 완성되었다.

북송(北宋) 중기까지 황실 조공품으로서 명성을 유지하던 월주요는 11세기 말부터 12세기에 접어들며 점차 쇠퇴하였다. 수백 년에 걸친 집중 벌채로 인한 연료 고갈, 양질의 고령토 고갈과 더불어, 북송대 점차 문화의 확산으로 검은색 찻잔(건요 다완)이 선호되는 등 다도 유행이 변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이후 남방 청자의 중심은 남송대 룽취안요(龍泉窯, 용천요)로 이동하게 되었다.

월주요 도식

음다 문화와 월주요 다기의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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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기 차는 찻잎을 쪄서 찧은 뒤 떡 형태로 굳힌 단차(團茶)를 갈아 솥에 끓여 마시는 자다법(煮茶法)이 중심이었다. 이때 찻물의 빛깔과 온도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그릇으로 월주요의 청자 완(茶碗)이 선택되었다.

당대의 다성(茶聖) 육우는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다경(茶經)》 권하(卷下) '사지기(四之器)' 편에서 전국의 가마를 비교하며 월주요의 다기를 으뜸(上)으로 평가하였다. 육우는 당시 백자의 대표였던 형주요(邢州窯)와 월주요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어떤 이는 형주요가 월주요의 위에 있다고 여기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형주 자기가 은(銀)과 같다면 월주 자기는 옥(玉)과 같으니 이것이 첫 번째요, 형주 자기가 눈(雪)과 같다면 월주 자기는 얼음(氷)과 같으니 이것이 두 번째다. 형주 자기는 희어서 차 색을 붉게 만들지만 월주 자기는 푸르러 차 색을 녹색으로 빛나게 하니 이것이 세 번째다."

육우가 상찬한 월주요 다기는 찻물의 맑은 황록색 빛깔을 푸른 유약 아래서 가장 청량하고 신선하게 드러내 주는 시각적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월주요에서 생산된 주요 다구 기형은 다음과 같다.

  • 옥벽저완(玉璧底碗): 찻잔 굽의 단면이 고대 옥기(玉器)인 벽(璧)처럼 넓고 평평하며 가운데에 얕은 원형 홈이 파여 있는 형태이다. 바닥 접지면이 넓어 안정감이 뛰어나며, 뜨거운 탕수를 담았을 때 손으로 잡기 편하여 당대 다도 애호가들의 표준 차완으로 애용되었다.
  • 화형완(花形碗) 및 하엽배: 구연부(입술 부위)를 4~5갈래의 꽃잎이나 연잎 가장자리처럼 유려한 곡선으로 접어 빚은 완과 차배이다. 자연물을 모티브로 한 조형은 도가적 탈속과 선(禪) 사상이 결합된 차 모임의 격조를 높였다.
  • 집호(執壺/注子): 짧은 주둥이(유, 流)와 손잡이가 달린 주전자로, 솥에서 끓인 탕수를 차완에 따르거나 다맥(茶沫, 찻물 거품)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비색청자의 과학적 특성과 법문사 지궁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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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요 기술의 정점은 '비색(秘色)'이라 불리는 유색의 실현에 있었다. 오랫동안 문헌상으로만 전해지던 비색의 실체는 1987년 중국 산시성(陝西省) 부풍현 법문사(法門寺) 지궁(地宮, 지하 석실) 발굴을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

당나라 희종(僖宗)이 874년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하며 공양한 물품 목록인 석비 〈의물장(衣物帳)〉에는 "비색자공완(秘色瓷椀) … 등 비색자기 14사(事)"라는 명문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현장에서 월주요 상림호 가마터에서 제작된 완, 접시, 병 등 14점의 유물이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었다.

월주요 비색청자의 뛰어난 완성도는 고도의 요업 공학 기술에서 기인한다.

  • 유약과 환원 소성: 태토와 유약에 함유된 미량의 산화철(III)인 Fe2O3 성분을 가마 내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고온 환원염(1,250~1,280℃) 상태에서 소성하였다. 일산화탄소(CO) 분위기 속에서 철 이온이 산화철(II)인 FeO(Fe2+) 형태로 환원되면서 맑고 투명한 담록색·취록색의 비취 빛깔을 발색시켰다. 유약 표면은 유리질화가 완벽하여 미세한 잔금(빙렬)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 밀봉 갑발(匣鉢) 기법: 법문사 비색청자 조사 결과, 기물을 하나씩 전용 원통형 도자 용기인 갑발에 넣고 뚜껑 틈새를 내화토로 빈틈없이 밀봉하여 구워냈음이 확인되었다. 이 기술은 가마 내부의 유황 가스나 재, 그을음이 기물 표면에 닿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기밀성을 높여 유약의 균일한 발색과 매끄러운 옥조(玉照)를 구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당·송대 다기 비교: 남청북백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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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와 송나라 전기 도자 다기는 지역적 원료와 음다 풍속에 따라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남방을 대표하는 월주요 청자와 북방을 대표하는 형주요 백자, 그리고 후대 송대 점차 유행기 건요 흑자 간의 특성은 차 문화사적 변천을 잘 드러낸다.

구분 월주요(越州窯) 청자완 형주요(邢州窯) 백자완 건요(建窯) 흑유완
주요 산지 남방 저장성(절강성) 상림호 북방 허베이성(하북성) 내구현 남방 푸젠성(복건성) 건양
대표 시기 당대 중기 ~ 오대 (8~10세기) 당대 전기 ~ 중기 (7~9세기) 북송 ~ 남송 (11~13세기)
기형적 특징 옥벽저(해무리굽), 옥 같은 반투명 녹색 옥벽저, 눈과 은에 비유된 순백색 두터운 원추형(천목형), 토모반·유적반
주요 음다법 자다법(煮茶法) 자다법(煮茶法) 점차법(點茶法, 투차)
찻물과의 조화 맑은 황록색 탕수를 신선한 녹색으로 돋보이게 함 차의 탕색을 붉은 갈색 톤으로 대비시킴 격불로 일으킨 흰 차 거품(탕화)을 극명히 대비
문화적 위상 육우 《다경》 1위, 황실 비색 공자기 조정 공납 백자, 도요(陶窯)의 호칭 송 휘종 《대관차론》 극찬 다완

월주요 청자완은 당대 선승(禪僧)들과 문인 사대부들이 추구하던 담백하고 은유적인 자연주의 다도 정신을 완벽히 대변하는 기물이었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차 문화에 미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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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주요의 도자 기술과 다완 양식은 한반도의 도자 역사와 음다 문화 형성에 직접적인 기틀을 제공하였다.

9세기 후반 통일신라 말기부터 10세기 초 고려 초기, 장보고의 청해진을 잇는 황해 해상 교역로와 중국 선종 사찰로 유학을 다녀온 구산선문(九山禪門) 승려들을 통해 대량의 월주요 청자 다완이 한반도로 유입되었다. 승려들과 귀족층 사이에서 당나라식 차 문화가 급속히 확산되자 고급 찻그릇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였다.

이에 따라 월주요의 요업 기술자와 도공 집단이 고려로 이주하여 가마 축조 기술을 전파하였다. 경기 시흥 방산동, 용인 서리, 전남 강진 용운리 등 고려 초기 요지 발굴 결과, 중국 월주요의 전형적인 가마 구조인 벽돌 가마(전축요, 塼築窯)와 옥벽저완이 고스란히 확인되었다. 한국 도자사에서 '해무리굽완'으로 명명된 초기 청자 사발은 월주요 옥벽저완을 그대로 모방하여 제작된 대표적인 다기이다.

고려 왕실은 월주요 기술을 기반으로 세워진 관요에서 생산된 청자 다완을 국가적 제례와 연등회·팔관회의 행다(行茶) 의례에 공식 기물로 배포하였다. 고려의 장인들은 월주요의 벽돌 가마를 한반도 토양에 맞는 진흙 가마(토축요)로 개량하고, 규석과 석회유를 활용한 독창적인 환원 소성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12세기 전반에 이르러 중국 송나라 서긍(徐兢)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비색(翡色)"이라 찬탄하고 천하제일의 명물로 칭송받은 독자적인 고려청자를 완성하게 되었다. 고려청자의 조형적 시원이자 동아시아 차 문화의 미학적 기준을 세운 모태가 바로 월주요였다. 명대 이후 찻잎을 우려 마시는 산차 중심의 포다법이 확산되면서 찻그릇의 주류는 자사호와 개완으로 변화하였으나, 차완 본연의 색채와 기능을 완성한 월주요의 유산은 다도 공예사 전반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같이 보기

각주

[1] slideshare.net – slideshare.net
[4] scribd.com – scribd.com
[5] tianmen.gov.cn – tianmen.gov.cn
[6] 人民日报海外版-人民网 – paper.people.com.cn
[9] 宋代茶盞特展 – lib.ntu.edu.tw

참고 문헌

  • 육우, 《다경(茶經)》, 760년경.
  • 서긍,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4년.
  • 강경숙, 《한국도자사》, 일지사, 2012.
  • 馮先銘, 《中國陶瓷史》, 文物出版社, 1982.
분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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