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향차
가향차(加香茶)는 찻잎에 꽃잎, 건조 과일, 허브, 향신료 등을 섞거나 천연·합성 향료를 입혀 독특한 풍미를 구현한 차이다[1]. 영어로는 플레이버드 티(Flavored tea)라고 불리며, 차나무(Camellia sinensis)의 잎이 지닌 고유한 맛에 다채로운 향기를 융합하여 기호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2].
역사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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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향을 더하는 문화는 동양과 서양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3].
중국에서의 가향차 역사는 명나라 시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1][3].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주원장)는 1391년, 송나라 대부터 공납용으로 제작되어 백성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던 용단단차(龍團團茶)의 제조를 전면 금지하는 어명을 내렸다[3]. 이에 따라 잎차 형태인 산차(散茶)를 우려 마시는 제다법과 음다법이 보편화되었고, 자연스럽게 찻잎에 꽃향기를 입히는 화차(花茶) 가공 기술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3][4]. 명나라의 문인들은 찻잎의 다공성 성질을 이용해 재스민, 장미, 매화 등의 꽃향기를 흡착시키는 기술을 고안해 냈으며, 이는 동양 가향차의 효시가 되었다[3].
서양에서는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가향차 문화가 만개하였다[2][5]. 가장 대표적인 서양 가향차인 얼그레이(Earl Grey)는 영국의 찰스 그레이 백작(1830~1834년 영국 총리 역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1]. 당시 중국의 사절단으로부터 선물 받은 독특한 풍미의 차를 재현하기 위해 런던의 차 상인들이 홍차 베이스에 이탈리아산 베르가모트(Bergamot) 감귤류 껍질 오일을 착향하여 판매한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1]. 이후 프랑스의 마리아주 프레르(Mariage Frères), 포숑(Fauchon) 등 전문 차 브랜드들이 정교한 조향 기술을 차에 접목하면서 현대의 다양하고 감각적인 가향차 시장이 확립되었다.
주요 제조 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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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향차를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전통적인 자연 흡착 방식, 현대적인 향료 코팅 방식, 그리고 원료를 직접 섞는 블렌딩 방식으로 구분된다[5].

자연 흡착식 (식향/훈증)
찻잎이 수분과 냄새를 강하게 빨아들이는 성질을 이용한 전통 제법이다. 신선한 꽃잎(재스민, 치자, 장미 등)과 찻잎을 켜켜이 쌓아두면 찻잎이 꽃의 수분과 정유 성분을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향이 충분히 배면 꽃잎을 골라내고 찻잎을 다시 건조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 과정을 거친 대표적인 차가 바로 재스민차이다. 인공적인 자극이 없고 은은하며 깊은 풍미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착향식 (액상향/과립향 코팅)
현대 가향차 제조의 주류를 이루는 방식으로, 회전식 코팅기 등을 사용하여 찻잎 표면에 천연 에센셜 오일이나 합성 액상 향료를 미세하게 분사하여 코팅한다[6]. 대량 생산이 용이하고 향의 선명도가 매우 높으며 지속성이 뛰어나다[6]. 최근에는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액상 대신 열과 빛에 강한 과립형 향료를 물리적으로 혼합하는 공법도 활용되고 있다[7].
원료 블렌딩식
찻잎 베이스에 건조한 꽃잎, 허브, 동결건조 과일 조각, 시나몬이나 생강 같은 향신료 등을 물리적으로 직접 혼합하는 방식이다. 향료 코팅 방식과 병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우려내기 전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원료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다층적인 풍미를 제공한다[5]. 예컨대 한국의 전통적인 귤피차 제조법처럼 귤껍질을 찻잎과 혼합하여 감귤류 특유의 산뜻함을 더하는 방식도 넓은 의미의 원료 블렌딩에 부합한다.
분류와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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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향차는 사용되는 베이스 찻잎의 발효도(녹차, 백차, 청차, 홍차 등)와 더해지는 향의 종류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분류된다[1].
| 명칭 | 베이스 차 | 주요 가향 원료 | 풍미 및 특징 |
|---|---|---|---|
| 얼그레이 (Earl Grey) | 홍차 (기문, 실론 등)[8] | 베르가모트 오일[1] | 시트러스 계열의 산뜻하고 쌉싸름한 오렌지 향이 특징인 가향 홍차의 대명사[1][8] |
| 재스민차 (Jasmine Tea) | 녹차 또는 약발효 청차 | 재스민 꽃 | 화사하고 달콤한 꽃향기가 특징이며 중식 요리와 조화가 뛰어남 |
| 랍상소우총 (정산소종) | 홍차[9] | 소나무 훈연[9] | 소나무를 태워 그을린 연기를 흡착시켜 매우 강렬하고 스모키한 나무 향이 남[9] |
| 밀키 우롱 (Milky Oolong) | 청차 (우롱차)[3] | 우유 및 크림 향료[3] | 우롱차 특유의 꽃향에 부드럽고 달콤한 연유 혹은 우유 향을 더한 가향 청차[3] |
| 모로칸 민트 (Moroccan Mint) | 건파우더 녹차 | 스피어민트 잎 | 아프리카 북부에서 유래한 차로, 민트의 강한 청량감과 청량한 녹차의 맛이 결합함 |
과학적 성분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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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향차는 베이스가 되는 찻잎의 화학적 특성과 첨가된 향기 물질의 유기적 결합으로 독특한 물성을 나타낸다[10].
탄닌과 카테킨의 마스킹 효과
일반적인 녹차나 홍차는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EGCG)를 비롯한 카테킨류 성분과 탄닌 성분 때문에 특유의 떫고 쓴맛을 지닌다[4]. 가향차에 첨가된 과일 향이나 바닐라, 초콜릿 등의 향기 분자는 인간의 후각 세포를 먼저 자극하여 뇌가 느끼는 맛의 감각을 보정한다[7]. 이를 과학적으로 '마스킹(Masking) 효과'라 하며, 찻잎의 불쾌할 수 있는 떫은맛을 은폐하고 감칠맛과 화사함을 강조하여 차를 처음 접하는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도록 돕는다[7].
화학 성분의 조화
가향 홍차의 제조 과정에서 찻잎 속의 카테킨이 산화되어 형성되는 테아플라빈(Theaflavin)과 테아루비긴(Thearubigin)은 차의 붉은 색상과 깊은 바디감을 형성한다[11]. 여기에 첨가된 에센셜 오일의 주성분인 리모넨(Limonene), 리날룰(Linalool), 게라니올(Geraniol) 등 휘발성 유기 화합물들이 결합하여 뜨거운 물에서 빠르게 기화하며 풍부한 아로마(Aroma)를 완성한다.
효능 및 음용 시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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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향차는 기본적으로 찻잎을 바탕으로 제조되므로 녹차나 홍차가 지닌 항산화 및 생리활성 효능을 공유한다[11].
심신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
차에 더해진 베르가모트, 재스민, 라벤더 등의 에센셜 오일 성분은 아로마테라피와 유사한 신경계 안정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11]. 특히 리날룰과 같은 성분은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가벼운 스트레스나 불안 증세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항산화 및 대사 활성화
가향차의 바탕이 되는 카테킨과 테아플라빈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작용하여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혈행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11]. 또한 적량의 카페인은 중추신경을 완만하게 자극하여 집중력을 향상하고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11].
주의사항 및 보관법
일부 인공 합성 향료를 다량 사용한 저가의 가향차는 높은 온도에서 우릴 때 인위적인 풍선껌 향이나 화장품 향 같은 이취를 풍겨 오히려 기호성을 해칠 수 있다. 또한, 천연 에센셜 오일이나 향료 성분은 공기 중의 산소, 직사광선, 습기에 매우 취약하므로 반드시 밀폐 용기에 담아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향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12].
가향차는 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가향차를 우려낸 다공성 흙으로 만든 다기 등에는 향이 깊게 밸 수 있다. 따라서 가향 홍차나 꽃차류를 즐길 때는 향이 흡착되지 않는 유리나 자기 재질의 다구를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전 세계의 다양한 기후적 특징과 토양의 영향을 일컫는 테루아에 의해 싱글 오리진 티 고유의 독창적인 캐릭터가 결정된다면, 가향차는 조향사와 제다업자의 창조적인 블렌딩 기술에 의해 완성되는 또 하나의 예술적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정동효, 윤백현, 이영희, 《차생활문화대전》, 홍익재, 2004.
- 조은아, 《중국 차의 세계》, 김영사, 2012.
- 우치다 사토시, 《홍차의 세계사》, 글항아리,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