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태전
청태전(靑苔錢)은 찻잎을 쪄서 절구에 찧은 뒤 둥글넓적한 엽전 모양으로 빚어 건조하고 숙성시킨 한국의 전통 후발효 덩이차(고형차)이다. 주로 전라남도 장흥군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왔으며,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표면에 푸른 이끼가 낀 동전처럼 변한다 하여 청태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명칭과 어원
편집
청태전은 형태와 제조 방식, 유통 형태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려 왔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둥근 엽전 모양을 하고 있어 민간에서는 흔히 '돈차(錢茶)' 또는 '전차'라 불렀으며, 떡처럼 찧어 빚었다 하여 '떡차[餠茶]'나 '단차(團茶)'로 통칭되기도 했다. 또한 구멍 뚫린 찻덩이를 짚이나 끈으로 엮어 매달아 보관했기 때문에 '곶차(串茶)'나 '강차(綱茶)'라는 이름으로도 기록되었다.
'청태전'이라는 한자 표기는 건조와 숙성 과정에서 발효균이 작용해 차 표면이 파르스름한 녹갈색이나 청태(靑苔, 푸른 이끼) 빛을 띠는 현상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한편 1920년대 장흥 일대에서 김을 청태 또는 녹태라 불렀는데, 찻잎을 빻아 만든 덩이가 마른 김을 뭉쳐놓은 동전 모양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 정착되었다는 견해도 함께 전한다[1].
역사와 문헌 기록
편집
한국에서 찻잎을 쪄서 덩어리로 굳히는 병차 제다법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시대에 이르러 국가 관리 체계 속에 편입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조정에 차를 공납하던 전국의 다소(茶所) 19개소 중 무려 13개소가 장흥도호부 관내에 집중되어 있었다[1]. 이는 장흥과 남해안 일대가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던 핵심 차 생산지였음을 입증한다[1]. 당시 생산된 차는 궁중 의례와 약용, 관청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사옹원 등의 기관으로 공급되거나 지배층의 하사품으로 쓰였다.
조선 후기 실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전라도가 차의 주산지이며 그중에서도 장흥에서 나는 차가 으뜸이라고 기술되어 있다[1]. 이유원(李裕元)의 문집인 《임하필기(林下筆記)》와 《가오고략(嘉梧藁略)》에도 장흥 가지산 보림사(寶林寺) 주변의 차 문화와 죽로차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1]. 또한 1924년 발간된 이기용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쌍新式料理製法)》에도 장흥 일대에서 덩이차를 빚어 음용하던 방식이 수록되어 있어 근대기까지 명맥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1].
전통 제다 공정
편집
청태전은 찻잎을 덖어서 비비는 일반적인 엽차와 달리, 찌고(증숙), 찧고, 빚어 말린 뒤 미생물에 의해 장기간 발효시키는 공정을 거친다[2].

- 채취와 시들리기: 5월 초순에서 중순 사이 장흥의 산비탈 야생 차나무 군락에서 찻잎을 딴 뒤, 하룻밤 정도 그늘에서 시들려 수분을 조절한다[2].
- 증숙(蒸熟): 시루나 가마솥에 찻잎을 넣고 수증기로 충분히 쪄서 산화효소 활성을 불활성화하고 섬유질을 유연하게 만든다.
- 절구질: 쪄낸 찻잎의 김을 뺀 뒤 절구에 넣고 끈기가 생길 때까지 찧는다. 잎의 세포벽이 파괴되면서 즙액이 나와 반죽 상태가 된다[2].
- 성형 및 천공: 찧은 찻잎 반죽을 대나무 틀이나 목재 틀에 넣어 직경 3~5cm, 두께 1cm 내외의 둥근 모양으로 찍어낸다. 이어 건조 시 통풍을 돕고 끈으로 꿸 수 있도록 중앙에 젓가락 등으로 구멍을 뚫는다[2].
- 1차 건조와 엮기: 채반에 널어 통풍이 잘되는 그늘이나 햇볕에서 겉면을 1차로 말린 뒤, 건조된 차들을 짚이나 한지로 엮어 새끼줄처럼 매단다[2].
- 후발효 및 숙성: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실내나 전통 옹기(항아리)에 넣어 최소 6개월에서 수년 이상 자연 발효와 숙성을 진행한다[2]. 이 과정에서 온·습도 환경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작용하여 고유의 향미 성분을 생성한다[2].
미생물학적 특징과 성분
편집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연구(2018년)에 따르면 청태전은 동아시아의 다른 전통 후발효차와 비교할 때 뚜렷하게 구별되는 미생물 생태계를 지닌다[2].
| 구분 | 한국 청태전 | 중국 보이숙차 | 일본 아와반차 |
|---|---|---|---|
| 주요 우점 미생물 | 판토에아속(Pantoea sp., 약 57.1%)[3] | 스핑고모나스속(Sphingomonas sp., 약 19.1%) 및 누룩곰팡이[2][3] | 락토바실루스속(Lactobacillus sp., 약 88.9%)[2][3] |
| 주요 미생물 성향 | 혐기성 세균 우점[2] | 호기성 세균 및 사상균 복합 작용[2] | 통성혐기성 젖산균 우점[2] |
| 제조 형태 | 가운데 구멍이 뚫린 엽전형 고형차[4] | 병차·타차·전차 형태의 압착 덩이차 | 잎 형태(산차) |
| 향미 특성 | 떫은맛이 적고 구수하며 단맛이 돔[5] | 묵직하고 흙내음, 진한 진향 | 젖산 발효 특유의 산미 |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생찻잎에 풍부한 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 등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 성분이 산화·중합되어 복합 폴리페놀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찻물의 수색은 맑은 오렌지빛에서 붉은 갈색으로 변하며, 떫고 쓴맛이 줄어들고 부드럽고 구수한 맛과 단맛이 두드러지게 된다[5][6]. 미생물 발효 대사물질로 다양한 유기산과 유리 아미노산이 유지되어 위에 가해지는 자극이 적은 편이다.
음용 방식과 민간 활용
편집
청태전은 장기간 건조·숙성된 고형차이므로 우리는 방식에 독특한 전통이 존재한다.
- 화로 굽기(자차법의 잔재): 탕수에 우리거나 끓이기 전, 청태전을 약한 숯불이나 가스불, 마른 프라이팬에 앞뒤로 살짝 노릇하게 굽는다. 굽는 과정을 거치면 차 표면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잡내나 습기가 제거되고 구수한 향이 배가된다.
- 달여 마시기(전다법): 구워낸 청태전 1개를 주전자나 탕기에 넣고 물 1
1.5L를 부어 약불에서 1020분간 은근히 끓여 낸다. 오래 달여도 떫어지지 않고 맑은 탕색이 유지되며, 여러 차례 재탕하여 마실 수 있다. - 우려 마시기: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다관(티팟)에 넣고 95°C 이상의 뜨거운 물을 부어 1~2분 정도 우려 마신다[2].
과거 남해안 일대의 민가에서는 청태전을 일상적인 기호음료뿐 아니라 가정 상비약으로 요긴하게 활용했다[5]. 소화가 잘되지 않거나 복통(배앓이)이 생겼을 때, 혹은 감기(고뿔) 기운이 돌 때 청태전을 진하게 달여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5]. 감기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청태전을 달일 때 생강이나 말린 귤껍질인 진피, 모과 등을 함께 넣어 끓이기도 했다[2].
현대적 복원과 문화유산적 가치
편집
일제강점기와 근대화를 거치며 엽차 중심의 일본식 녹차가 확산됨에 따라 청태전의 명맥은 장흥 일부 농가와 사찰을 제외하고 단절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부터 장흥군 농업기술센터와 지역 다원을 중심으로 자생 야생 차나무 복원과 전통 제다법 학술 조사가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복원 작업이 추진되었다[7].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청태전은 현대 차 시장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2008년과 2011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세계녹차콘테스트'에서 최고금상 및 금상을 연속 수상하며 국제적 평가를 받았다[2][6]. 2013년에는 국제 슬로푸드 생명다양성재단의 소멸 위기 전통 생물자원 보존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등재되었다[7][8]. 또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야생 차밭 관리 방식과 전통 고형차 제다 기술의 역사성을 인정받아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주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2호(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로 지정되었다[1].
현재 청태전은 지리적표시 단체표장 등록 등을 통해 전통 제다 기준 규격화가 추진되고 있으며, 한국 차 문화사에서 단절되었던 전통 떡차 문화를 실물로 잇는 핵심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7].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장흥도호부 편, 1454년
- 김정호, 《대동지지(大東地志)》, 1860년대
-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전통 떡차 청태전의 미생물 군집 특성 연구', 2018.
- 농림축산식품부, '국가중요농업유산 제12호: 장흥 발효차 청태전 농업시스템',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