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눈 티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는 늦은 오후 무렵에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의 다과와 함께 차를 즐기는 영국의 전통적인 다과회이자 사교 문화이다.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의 긴 공복을 달래기 위해 19세기 영국 상류층에서 고안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여유와 우아함을 상징하는 미식 문화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역사 및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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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의 기원은 1840년경 영국의 제7대 베드퍼드 공작부인인 안나 마리아 러셀(Anna Maria Russell, Duchess of Bedford)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초 영국 상류층의 일반적인 식습관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뒤 점심을 가볍게 때우고, 저녁 8시 무렵이 되어서야 늦은 만찬(Dinner)을 갖는 형태였다. 이로 인해 낮 시간대에 허기를 견뎌야 했던 공작부인은 오후 4시경 하녀들에게 빵과 버터, 간단한 다과와 함께 홍차를 방으로 가져오게 하여 요기를 하였다[1][2].
처음에는 개인적인 습관에 불과했으나, 점차 지인들을 초대하여 다과를 함께 나누는 사교의 시간으로 발전했다. 영국의 저명한 귀족 가문에서 시작된 이 다과회는 입소문을 타고 런던 사교계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졌다[3]. 이후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상류층의 공식적인 사교 행사로 자리매김하였고, 대영제국의 번성과 함께 샌드위치와 스콘이 추가되는 등 오늘날의 정교한 형태로 발전하였다[3][4].
애프터눈 티의 구성과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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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애프터눈 티는 미학적인 테이블 세팅을 중시하며, 보통 은제 또는 자기를 사용한 '3단 트레이(3-Tier Stand)'에 제공된다[3]. 다과는 한입에 먹기 편한 작은 크기로 준비되며, 차는 따뜻하게 우려낸 홍차가 기본이 된다.
3단 트레이 구성
트레이에 담긴 음식은 가장 아래층부터 위로 올라가며 순서대로 먹는 것이 정통 예절이다[3]. 이는 짭짤한 맛에서 시작하여 점차 단맛으로 넘어가는 미식의 기본 원칙을 따른 것이다.
| 층수 | 메뉴 종류 | 상세 구성 | 먹는 순서 |
|---|---|---|---|
| 3단 (최상층) | 달콤한 디저트 (Sweets/Petit Fours) | 마카롱, 타르트, 에클레어, 작은 조각 케이크, 초콜릿 등 단맛이 강한 다과[3] | 마지막 (3번째) |
| 2단 (중간층) | 스콘과 크림 (Scones) | 갓 구워낸 따뜻한 스콘,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 딸기 잼이나 과일 잼[3] | 두 번째 |
| 1단 (최하층) | 짭짤한 핑거푸드 (Savories/Sandwiches) | 얇게 썬 오이 샌드위치, 훈제 연어 샌드위치, 달걀 샌드위치, 짭짤한 타르트 등 식사 대용 핑거푸드[3][5] | 첫 번째 |
특히 1단의 '오이 샌드위치'는 19세기 당시 애프터눈 티의 상징과도 같았다. 영국의 서늘한 기후에서 신선한 오이를 재배하려면 난방 시설이 갖춰진 온실과 전문 정원사를 두어야 했으므로, 얇게 썬 오이 샌드위치를 내놓는 것은 곧 주인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5][6].
곁들이는 차(Tea)
애프터눈 티에 가장 널리 쓰이는 음료는 홍차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 얼그레이(Earl Grey), 다즐링(Darjeeling), 아삼(Assam) 등의 찻잎이 주로 사용된다[3]. 영국 전통 방식에서는 찻잎을 넉넉히 넣고 우려낸 뒤 따뜻한 우유를 곁들여 밀크티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차에 함유된 카테킨과 아미노산의 일종인 테아닌 성분은 특유의 떫은맛과 감칠맛을 더할 뿐만 아니라, 차를 마시는 동안 심신을 이완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에는 취향에 따라 과일 가향차를 선택하거나 특별한 날 샴페인을 곁들이는 '샴페인 애프터눈 티' 형태로 즐기기도 한다[7].
하이 티(High Tea)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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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 세계의 고급 호텔이나 라운지에서 애프터눈 티와 '하이 티(High Tea)'라는 용어를 혼용하거나, 하이 티를 더 고급스러운 티타임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잦다[8]. 그러나 역사적 맥락에서 두 용어는 향유 계층과 목적, 식사 형태에서 엄연한 차이를 지닌다.
- 로우 티(Low Tea): 귀족과 상류층이 즐기던 정통 애프터눈 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응접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높이가 낮은 찻상(Low Table)에 다과를 차려놓고 즐겼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4][9].
- 하이 티(High Tea):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공장 등에서 고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 계층의 실질적인 저녁 식사를 의미한다. 오후 5~7시경 식당의 높은 식탁(High Table)에 앉아 짙게 우린 홍차와 함께 고기, 감자, 치즈, 파이 등 열량이 높은 든든한 음식을 배불리 먹던 끼니였다[10]. 고기를 곁들인다 하여 '미트 티(Meat Tea)'라고도 불렸다[10].
따라서 고급스러운 3단 트레이에 디저트가 올려져 나오는 우아한 다과회는 '하이 티'가 아닌 '애프터눈 티(로우 티)'로 부르는 것이 역사적 원류에 부합한다[11].
크림 티와 에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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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의 다과 구성을 간소화하여 홍차와 스콘, 클로티드 크림, 잼만을 내놓는 것을 **크림 티(Cream Tea)**라고 부른다[12]. 이는 신선한 유제품 생산으로 유명한 영국 남서부 지역인 데번(Devon)과 콘월(Cornwall) 지방에서 특히 발달하였다[12].
데번셔 방식과 코니시 방식 논쟁
크림 티를 즐길 때 스콘에 크림과 잼을 바르는 순서를 두고 두 지역 간에는 오랜 자존심 경쟁이 존재한다[13].
- 데번셔 방식 (Devonian): 반으로 가른 스콘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먼저 듬뿍 바른 뒤, 그 위에 딸기잼을 얹는 방식이다[12][13].
- 코니시 방식 (Cornish): 콘월 지방의 방식으로, 스콘에 잼을 먼저 펴 바른 뒤 그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크게 한 숟갈 떠 올린다[12][13].
어느 방식을 택하든 맛과 식감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없으며, 현재 영국 전역에서 취향에 맞게 두 방식이 모두 널리 통용되고 있다[12][13].
다과 예절
애프터눈 티는 본래 상류층의 엄격한 사교 모임에서 출발했기에 지켜야 할 식사 예절이 존재한다[5].
- 먹는 순서: 1단의 샌드위치부터 시작해 2단의 스콘, 3단의 디저트 순으로 짠맛에서 단맛으로 이동하며 먹는다.
- 스콘 취식법: 스콘은 칼로 자르지 않고 손으로 가볍게 반으로 쪼개어 먹는 것이 정석이다[12][14]. 또한 햄버거처럼 위아래를 덮어 먹지 않고, 갈라진 단면에 각각 크림과 잼을 발라 조각별로 베어 먹는다.
- 음용 예절: 찻잔을 들 때는 새끼손가락을 세우지 않고 손잡이를 단정히 쥐며, 찻잔 받침(소저)은 테이블에 둔 채 잔만 들어 마신다(일어선 상태라면 받침도 한 손에 함께 든다). 차에 설탕이나 우유를 넣고 저을 때는 스푼이 찻잔 벽에 부딪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앞뒤로 가볍게 저어야 한다.
현대의 애프터눈 티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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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애프터눈 티는 19세기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점차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형태로 변모하였다. 영국의 영향을 깊게 받은 영연방 국가들(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물론,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호텔들의 핵심적인 식음료(F&B) 서비스로 애프터눈 티 세트가 제공되고 있다[3][4].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현지의 식재료나 다도 문화를 반영한 퓨전 양식이 발달했다[3]. 홍콩에서는 딤섬이 애프터눈 티 메뉴에 함께 구성되기도 하며[6], 서양식 홍차 대신 녹차나 말차로 풍미를 낸 디저트, 혹은 향긋한 우롱차나 청차 등을 페어링하여 내놓는 등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의 호텔 및 외식업계에서는 제철 과일을 활용한 프로모션(예: 딸기 애프터눈 티), 유명 하이엔드 뷰티·패션 브랜드와 협업한 디자인 애프터눈 티 등 시각적으로 화려한 상품을 다채롭게 선보이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타인과 교류하며 특별한 시각적·미각적 만족을 얻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애프터눈 티는 일종의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고급 문화 콘텐츠로서 확고히 기능하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Jane Pettigrew, 'A Social History of Tea', National Trust, 2001.
- Helen Saberi, 'Tea: A Global History', Reaktion Books, 2010.
- 정동효 외, 《차생활문화대전》, 홍익재,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