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청
쇄청(曬靑)은 차(茶)의 제조 공정 중 건조(乾燥) 단계에서 인위적인 화력이나 기계적인 열풍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햇볕을 이용하여 찻잎을 말리는 전통적인 제다법이다[1]. 또한 이 방식을 거쳐 생산된 쇄청녹차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며, 특히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쇄청모차(曬靑毛茶)'를 제조할 때 빠질 수 없는 필수 공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2][3].
정의와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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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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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쇄청은 기계화된 건조 설비나 대량의 가열 가마가 보급되기 이전부터 중국 윈난성(운남성)을 비롯한 서남부 변방 지역에서 사용되던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제다 기법이었다. 윈난성 일대의 고산 지대는 연중 일조량이 풍부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인위적인 땔감 소모 없이도 대량의 찻잎을 효과적으로 건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2].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채엽한 대엽종 찻잎을 마당이나 지붕에 넓게 펼쳐 햇볕에 말려 보관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쇄청모차는 차마고도를 거쳐 티베트나 서북 지방 등지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밤낮의 온도 차와 공기 중의 미생물에 노출되었다[5]. 이 오랜 여정 동안 찻잎 내부에서 자연스러운 산화와 미생물 발효가 일어나면서 독특한 풍미와 붉은 탕색을 지닌 보이차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쇄청은 보이차 역사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기술로 전승되어 왔다[5].
제다 공정에서의 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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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청은 독립된 제다 과정이 아니라, 찻잎이 완성품으로 거듭나는 전체 흐름 속의 최종 건조 단계에 해당한다[6]. 쇄청모차가 만들어지는 전체 과정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6].

- 채엽(採葉) 및 위조(萎凋): 차나무에서 자란 대엽종 찻잎을 채취한 뒤, 그늘이나 통풍이 잘되는 실내에 펼쳐 두어 찻잎의 수분을 완만하게 감소시키고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6].
- 살청(殺靑): 찻잎에 열을 가해 산화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단계다[6]. 일반적인 녹차가 고온에서 효소를 완전히 사멸시키는 것과 달리, 보이차용 쇄청모차는 80°C 내외의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덖는 '저온살청'을 진행한다[2][5]. 이는 후속 발효에 필요한 효소의 활성을 일부 남겨두기 위함이다[5][6].
- 유념(揉捻): 살청을 마친 찻잎을 비벼 세포벽을 적당히 파괴함으로써 차의 성분이 물에 쉽게 우러나도록 하고, 찻잎의 외형을 둥글게 말아준다[6].
- 쇄청(曬靑): 유념이 끝난 축축한 상태의 찻잎을 대나무 멍석(시배)이나 넓은 건조대에 얇고 균일하게 펼친 뒤 햇볕 아래 노출시킨다. 기상 조건이 좋은 날에는 보통 5
8시간 정도 소요되며, 건조 과정 중 찻잎을 주기적으로 뒤집어주어 골고루 마르도록 유도한다. 최종 수분 함량이 약 1012% 수준에 도달하면 공정을 마친다[5].
과학적 원리와 생화학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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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청은 단순히 물기를 날려 보내는 물리적 건조에 그치지 않고, 차의 화학적 성분 변화와 물리적 구조를 결정짓는 고도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내포하고 있다[5].
저온 건조와 산화효소의 잔존
기계를 사용하는 홍건(열풍 건조) 공정은 80°C에서 120°C에 이르는 고온의 열풍을 가하여 찻잎을 급속하게 건조한다. 이 과정에서 찻잎 내에 잔존하던 열에 약한 폴리페놀 산화효소(Polyphenol Oxidase) 등이 완전히 변성되어 사멸한다.
반면 쇄청은 강한 태양광 아래에서도 찻잎 자체의 표면 온도가 보통 40°C에서 60°C 수준을 넘지 않는 완만한 저온 상태에서 서서히 건조된다[5]. 이 덕분에 저온살청 단계에서 살아남은 산화효소들과 유익 미생물이 사멸하지 않고 활성 상태를 유지하거나 휴면 상태로 보존된다[5]. 이는 차를 장기 보관할 때 카테킨류가 서서히 산화·중합되어 테아플라빈이나 테아루비긴 등의 성분으로 변화하는 후발효 작용의 원동력이 된다.
일광 자외선에 의한 광화학 반응
햇볕 속의 자외선(UV)은 찻잎 세포 내의 유기 화합물 분해를 촉진한다[5].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성분이 완만하게 산화되어 맛이 한층 부드러워지며, 끓는점이 낮은 풀 비린내 성분(청미)이 휘발된다[5]. 대신 끓는점이 높은 방향성 물질들이 잔존하면서 쇄청 특유의 시원하고 독특한 태양의 향(일쇄미)을 형성하게 된다[5]. 또한, 엽록소가 부분적으로 분해되면서 찻잎의 색상이 선명한 녹색에서 어두운 황록색이나 갈록색으로 변화한다[5].
다공성 구조 유지와 긴압 성형의 용이성
햇볕 아래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마른 찻잎은 세포 조직이 급격하게 수축하지 않고 완만하게 수분을 잃기 때문에 미세한 다공성(多孔性) 조직을 유지하게 된다[5]. 이러한 다공성 조직은 향후 수증기를 쬐어 압착하는 증압(긴압) 성형 단계에서 찻잎의 파손을 방지하고 유연성을 높여 형태 유지를 돕는다[5]. 또한 성형된 긴압차 내부로 외부의 미량 산소와 수분이 원활히 드나들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여 후발효가 균일하게 진행되도록 돕는다[5].
다른 건조 방식과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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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다학에서는 최종 건조 방식에 따라 녹차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들의 특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구분 | 건조 매체 | 건조 온도 | 효소 잔존 및 미생물 보존 | 관능적 특징 | 장기 보관성 및 발효 가능성 |
|---|---|---|---|---|---|
| 쇄청(曬靑) | 일광(자연 햇볕) | 저온 (40~60°C)[5] | 효소 활성 유지, 미생물 보존[5] | 독특한 일쇄향, 두텁고 강한 미감, 은은한 단맛[2][5] | 매우 높음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짐)[5] |
| 초청(炒靑) | 가마솥 직접 가열 | 고온 (80°C 이상) | 완전히 불활성화 및 사멸 | 고소한 가마솥 덖음 향, 맑고 깨끗한 맛[7] | 낮음 (시간이 지날수록 산패 및 향미 열화) |
| 홍청(烘靑) | 온풍기, 숯불 열풍 | 중·고온 (70~100°C) | 완전히 불활성화 및 사멸 | 부드럽고 풋내가 적음, 은은한 꽃향기 | 낮음 (신선한 상태에서 소비 권장) |
| 증청(蒸靑) | 고온 수증기 및 온풍 | 고온 수증기 | 완전히 불활성화 및 사멸 | 찻잎·탕색·엽저가 모두 푸른 삼록(三綠) 특징[7] | 극히 낮음 (수개월 이내 소비 권장) |
쇄청과 보이차의 긴밀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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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청은 보이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법적·학술적 핵심 기준이다[2]. 중국 국가표준(GB/T 22111-2008)에 명시된 보이차의 정의에 따르면, 보이차는 '윈난성 특정 지역 내에서 재배된 운남대엽종 찻잎을 원료로 하고, **쇄청모차**를 기본 원료로 삼아 후발효를 거쳐 만든 차'로 제한되어 있다[2].
만약 건조 과정에서 우기 등의 날씨 영향으로 인해 일광 건조를 포기하고 기계식 열풍 건조기(홍간기)를 사용하여 건조할 경우, 이는 쇄청녹차가 아닌 '전록(滇綠, 운남 홍청녹차)'으로 분류된다. 홍청녹차로 만들어진 찻잎은 효소가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보관하여도 자연스러운 미생물 후발효가 일어나지 않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산패되어 가치가 떨어진다[5]. 따라서 오직 햇볕으로 건조한 진정한 쇄청모차만이 보이생차(청병) 및 미생물 인공 발효 과정을 거치는 보이숙차(숙병)의 정식 원료로 인정받을 수 있다[1].
현대 제다에서의 쇄청 기술과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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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야외 쇄청은 자연기후에 전적으로 의존하므로 가공 과정에서 외부 요인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건조 중에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거나 흐린 날씨가 지속될 경우 건조 속도가 느려져 찻잎 내부에서 원치 않는 과도한 산화가 일어나 이파리가 붉게 변하는 홍변(紅變) 현상이 일어나거나 곰팡이가 피어 차를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5][6]. 또한 야외에서 펼쳐 말리는 특성상 먼지, 이물질, 곤충 등 위생적인 오염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 제다업계는 이러한 위생 및 환경 통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닐하우스나 특수 유리 온실 형태로 설계된 **'일광 건조실(쇄청붕, 曬靑棚)'**을 널리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다. 일광 건조실 내부에는 자외선과 햇볕이 잘 투과하도록 설계되어 전통 쇄청이 지닌 광화학 반응의 이점을 고스란히 얻을 수 있으면서도, 외부의 비나 미세먼지 등의 오염원으로부터 차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다. 또한 내부의 온·습도 조절 장치와 강제 대류 송풍기를 결합하여 흐린 날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저온 건조를 마칠 수 있도록 보완함으로써, 쇄청의 본래 생화학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위생 수준과 생산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중국국가표준화관리위원회, '地理标志产品 普洱茶 (지리표지제품 보이차)', GB/T 22111-2008.
- 정동효 외, 《차 생활 문화 대전》, 홍익재, 2012.
- 진종헌, 《보이차 과학》, 다인디자인,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