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양종
겸양종(兼兩宗)은 조선 후기의 고승이자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의 저서 《동다송(東茶頌)》에 수록된 한문 시구로, 우리나라의 자생 차인 동다(東茶)가 중국의 대표적인 명차들이 지닌 두 가지 핵심 장점인 뛰어난 '맛'과 탁월한 '약효'를 모두 겸비하고 있음을 표현한 개념이다[1][2]. 이는 당시 중국산 차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던 맹목적인 태도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고유한 자연환경에서 자란 차나무와 제다 기술의 고유한 우수성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선언이자 한국의 차 문화가 지닌 깊은 자긍심의 상징으로 해석된다[2][3].
어원과 개념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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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종(兼兩宗)이라는 명칭은 한자어로 '겸할 겸(兼)', '두 량(兩)', '마루 종(宗)'을 써서 '두 가지 으뜸가는 성품이나 학파를 아우른다'는 뜻을 지닌다[4]. 한국 한자음으로는 흔히 '겸양종' 혹은 '겸량종'으로 읽히며, 일상에서 겸손과 양보를 뜻하는 '겸양(謙讓)'과 음은 같으나 한자와 그 내포된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5].
차 문화에서 말하는 두 가지 '종(宗)' 혹은 본질은 바로 차의 감각적인 즐거움인 **맛(味)**과 신체적 효능을 가져다주는 **약성(藥)**이다[2]. 예로부터 차는 마시는 이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호음료이자 건강을 증진하고 병을 다스리는 약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왔다[1][6]. 중국의 전통 다서들이 특정 산지의 차가 맛과 약효 중 어느 한쪽에 특화되어 있다고 분류한 것과 달리, 조선의 차인들은 한반도 남부와 지리산 일대의 야생 차밭에서 채취한 찻잎이 이 두 가지 최상의 가치를 완벽히 융합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가리켜 '겸양종'이라 일컬었다[7].
《동다송》 제10송의 기록과 문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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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는 1837년 정조의 부마이자 학자인 해거도인 홍현주의 요청을 받아 조선 차의 진면목을 노래하는 《동다송》을 지었다[6][8]. 이 저서의 제10송(판본 및 분류에 따라 제19송으로 보기도 함)은 바로 우리 차가 지닌 맛과 약효의 겸비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원문과 번역은 다음과 같다[4].
| 원문(한자) | 독음 | 국역 |
|---|---|---|
| 東國所産元相同 | 동국소산원상동 |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도 원래 근본이 같으니 |
| 色香氣味論一功 | 색향기미논일공 | 빛깔, 향기, 기운, 맛을 논하면 그 공력이 한결같네 |
| 陸安之味蒙山藥 | 육안지미몽산약 | 중국의 육안차는 맛으로 이름나고 몽산차는 약효로 명성이 높지만 |
| 古人高判兼兩宗 | 고인고판겸양종 | 옛사람들은 우리 차가 그 두 가지를 모두 겸비했다고 높이 판정했다네 |
이 시구에서 '고판(高判)'이란 차에 안목이 높은 현인이 깊이 관찰하여 권위 있게 판결하였다는 뜻이다[2]. 초의선사는 이 시를 통해 우리 땅에서 자생하는 차나무의 잎이 지닌 물질적·영양적 성분이 중국 남방의 명산지 차와 비교했을 때 조금도 뒤처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 최고의 차들이 가진 개별적인 우수성을 한 몸에 응축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2][3].
비교 대상으로서의 중국 명차: 육안차와 몽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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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종의 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의선사가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 중국의 대표적인 두 가지 명차인 육안차(六安茶)와 몽산차(蒙山茶)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9].
육안차 (六安茶)
중국 안휘성 육안(六安) 지방에서 생산되는 차로,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황실에 바치는 공차(貢茶)로 널리 알려졌다[2]. 찻잎의 외형이 수려하고 우려낸 찻물이 맑으며, 특유의 상쾌하고 단맛이 깊어 예로부터 "맛으로써 승리하는 차(以味勝)"로 평가받았다. 동양의 전통적인 미식가들과 다인(茶人)들은 육안차를 최고의 기호적 맛을 대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2].
몽산차 (蒙山茶)
중국 사천성 아안(雅安) 부근의 몽산(蒙山, 혹은 몽정산)에서 생산되는 차로, 도교와 불교의 수행자들이 주로 재배하였다[1]. 당나라 시절부터 황실의 최고급 제례용 차로 쓰였으며, 신체의 기혈을 다스리고 두통을 치료하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기록되어 "약효로써 승리하는 차(以약勝)"로 꼽혔다.
초의선사는 당대의 명사들이 이 두 차를 각기 '최고의 음료'와 '최고의 약재'로 명확히 구분하여 소비하던 흐름을 짚어내며, 조선의 차는 이러한 분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맛과 효능을 한 번에 만족시키는 '겸양종'의 완전무결한 균형을 성취했음을 역설하였다[2].
《동다기》의 영향과 실학 사상과의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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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다송》의 겸양종 개념은 초의선사의 독창적인 주장이기보다는, 조선 후기 실학파 학자들의 체계적인 관찰과 학술적 저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10][11]. 초의선사는 제10송의 주석(註)에서 조선의 대표적인 다서인 《동다기(東茶記)》를 직접 인용하여 논리적 신뢰성을 확보하였다.
과거 《동다기》는 오랜 유배 생활 동안 차를 치료의 목적으로 음용하였던 다산 정약용의 저술로 인식되었으나, 현대 학계의 서지학적 연구에 의해 그 저자가 전의 이씨 가문의 실학자 이덕리(李德履)임이 밝혀졌다. 이덕리는 1785년 무렵 저술한 《동다기》의 제6장 〈다지효(茶之效)〉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3]: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차의 효능이 중국 월산(越産)의 차에 미치지 못한다고 의심하나, 내가 보건대 색(色), 향(香), 기(氣), 미(味)에 있어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다서에 이르기를 '육안차는 맛이 좋고, 몽산차는 약용으로 좋다'고 하였으나, 우리나라의 차(동다)는 이 두 가지를 대개 겸하였다(東茶盖兼之矣). 만약 이찬황(당나라의 명재상이자 다인 이덕유)이나 육자우(다경의 저자 육우)가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나의 말을 수긍하였을 것이다."[3]
이처럼 실증적인 태도로 국산 차의 생태적 가치와 의학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한 실학적 통찰은 초의선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10][11]. 찻잎의 외형이나 가공 상태뿐 아니라 인체에 미치는 긍정적 효능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으로 분석한 이러한 사상적 연대는 조선 후기 차 문화 부흥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10][11].
제다와 포다법을 통한 겸양종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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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차가 맛과 약효를 모두 충족하는 겸양종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생적 조건을 넘어, 이를 온전히 구현해낼 수 있는 고도의 제다(製茶) 기술과 과학적인 포다법이 전제되어야 했다[7][12]. 초의선사는 명나라의 가공법인 덖음차(초청차) 제다법을 조선의 자연환경과 찻잎의 생태적 시기에 맞게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3][7].
특히, 초의선사는 찻잎의 참된 성품(眞性)을 유지하기 위해 물의 온도, 불의 조절, 그리고 다기를 다루는 태도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4][13]. 《다신전》과 《동다송》에 기록된 우려내기 원칙에 따르면, 차를 마시기 전에 먼지를 털어내고 잎을 정돈하는 세차 과정 역시 가볍고 부드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끓는 뜨거운 물로 성급하게 잎을 씻어내거나 오랫동안 탕수에 방치하게 되면 찻잎 내부에 보존되어 있던 정미로운 맛과 생리 활성 성분이 파괴되어 우리 차가 지닌 본연의 겸양종적 특성이 손상되기 때문이다[4].
현대적 학술 분류상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등의 6대 다류가 제조 공정 중 산화와 발효 조절을 통해 맛과 성분을 다르게 발현하는 것과 같이, 조선의 다인들은 제다 과정에서의 정밀한 제어를 통해 찻잎이 품고 있는 천연의 약성과 감미로운 풍미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역사적·문화적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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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종은 단순히 조선 차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주관적 예찬에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추구한 독창적인 문화적 철학을 담고 있다[6].
첫째, 동양의 오랜 사상인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을 완성도 높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음식과 약의 근원이 하나라는 관점 아래, 일상적으로 음용하는 찻잔 속에서 미각적 즐거움과 신체적 치유를 동시에 도모하려 했던 조선 차인들의 실용적이면서도 격조 높은 일상 예술을 대변한다.
둘째, 18~19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에 팽배해 있던 중국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망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시각으로 아국의 자연을 재발견하게 한 자주적 문화 운동의 성격을 띤다[2][6]. 이덕리의 《동다기》와 초의선사의 《동다송》으로 이어지는 겸양종의 담론은 척박한 바위틈에서 자라나 깊은 밤이슬을 머금은 한반도의 차나무가 곧 최고의 영초(靈草)라는 자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7][14].
오늘날 겸양종의 정신은 웰빙과 명상, 그리고 차를 통한 전인적 치유를 지향하는 현대 차 문화 및 건강 담론 속에서도 여전히 그 유효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6].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 초의선사, 《동다송(東茶頌)》, 1837년
- 이덕리, 《동다기(東茶記)》, 1785년경
-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다송(東茶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